어학연수라 쓰고 혼자 살아보기라고 읽는다
“어학연수 간다고?”
“응.”
“지금?”
“응.”
“혼자?”
“응.”
"남편이 괜찮대?”
"(이 나이에 남편 동의가 필요하냐?)... 응"
"얼마나 들어?
"형편껏 짧게 가는 거야."
어학연수를 간다고 하면, 사람들 얼굴이 잠깐 정지화면이 된다.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면서, 질문을 쏟아낸다. 설명회라도 열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건 ‘굳이, 지금 뭐 하러?’이다. 나는 되묻고 싶어 진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나도 망설였다. 거창한 목적도, 이렇다 할 계획도 없었다. 낯선 곳에서 혼자 지내고 싶다는, 막연하고 오래된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뿐이다. 비행기표를 끊을 때는 손이 떨렸다. 설레서 그런 건 아니었다. ‘진짜 가는 건가?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확 저질러도 되나?’라는 생각으로 주춤거렸다. 몇 번이고 예약창을 열었다 닫았다. 예약 버튼을 누르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이 나이에 어학연수라니' 남들이 하는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왜 안 해봤겠는가. 왠지 좀 부끄럽기도 하고, 욕심 같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이 툭, 가는 쪽으로 기울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었다. 오래 망설이고 주저한 것에 비하면, 결정은 이상할 만큼 짧은 순간에 이뤄졌다. 떠나고 싶었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고, 그보다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혼자 지내보고 싶었다. 이 모든 걸 합쳐서 이름을 붙인 것이 '어학연수'였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 나이에 영어가 그렇게 중요해?"
"한두 달 가서 뭐가 달라져?”
"그냥, 뭐..."
나는 웃으며 얼버무린다.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없어'. 이 말은 속으로 삼킨다.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 나를 놓아두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보고 싶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었다. 영어 앱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실전 영어를 하고 싶어지기도 했다(03화 칠십에는 유창하게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나를 밀어 넣고 싶은 마음이 컸다. 굳어질 대로 굳어져버린 감각을 깨우고 싶었다. 꼭 멀리 떠나야만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낯선 도시에서 낯선 언어를 배우는 일은 나를 낯설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 같았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주하게 될 내가 궁금하다. 이런 생각을 굳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거나 이해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는 나의 인생 스케줄대로 살면서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과 경험을 내 식대로 소화하면 된다.
이 짧은 경험으로 내가 크게 달라지리라는 기대도 없다. 긴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나는 다시 익숙한 나의 집에서 일어나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할 것이다. 다만 그 익숙한 일상이 이전과 조금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어딘가에 작은 틈이 생겨 그 사이로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바란다. 그 바람을 맞으며 나는 또 새로운 궁리를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해보는 거다.
하나둘 생각나는 대로 짐을 챙긴다. 꼭 필요한 것만 선별하는데도 방 한구석에 물건이 가득하다. 옷가지 몇 벌, 꼭 필요한 생활용품, 책 두 권. 휴대폰 충전기와 이어폰 같은 것들. 조금 긴 여행이기도 한 이 결정은 조용한 충동의 결과이기도 하다.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들썩인다. 짧지만 긴 여행이 조금 두렵고, 많이 궁금하다. 준비물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이제 나는, 간다!
이 후의 이야기를 [연재 브런치북] 웃기고 짠한 60대 어학연수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