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이 좋고, 무섭고, 어렵다

My History with Money

by 시원


'돈~돈돈 돈의 돈돈~ 악마의 금전~ ' 오래전에 이런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돈을 악마의 금전이라고 여기는 사람에게 돈이 붙을 리가 있나. 고등학교 때 '정치경제' 과목을 제외하고는 경제교육도 제대로 받아 본 기억이 없다. 신문을 읽을 때도 경제면은 자동으로 스킵했다. 그렇다고 돈이 많은 집에서 태어나 자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가진 것이 없는 데도 없는 티를 내지 않는 것을 자존심이라 생각하며, 돈 이야기 하는 것을 상스럽게 여기는 집에서 자랐다. 공무원인 부모가 재산을 늘리는 방법은 은행에 적금을 드는 게 다였다. 당시에 흔한 '계'도 안 했다. 자식들에게는 매달 정해진 용돈을 주었다. 나도 그 용돈으로 어렸을 때부터 박봉의 공무원처럼 살았다. 성인이 되어 궁핍한 상황에 놓일 때마다 나와 동생들은 자조적으로 말했다. '우리가 그쪽으로는 보고 배운 게 없어서 이래. 쓸데없이 자존심만 높아갖고 말이야.'




부모에게 보고 배운 게 없다고 경제에 이렇게 무지할 수가 있나. 나는 소위 말하는 금융문맹이다. 코스피 지수가 5,000을 바라본다는 뉴스에도 주식을 모른다. 여태껏 이런 꼴로 살다 보니, 모아둔 돈도 없다. 비슷한 직업을 갖고 비슷하게 살았는데 나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재산을 증식한 친구들을 보면, 나는 그동안 뭘 했지? 하는 자괴감이 든다. 이런 마음에 늙어가고 있다는 자각이 겹쳐지면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왕초보 주식 거래' 같은 동영상을 보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한다. 주식이나 코인을 안 하는 사람을 시대에 뒤떨어진 게으른 사람으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했다. 그런데, 도통 모르겠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도 아닌데 십 분 남짓한 동영상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필기까지 해 가며 간신히 왕초보 단계를 마무리했는데, 다음 단계로 넘어갈 기운이 나지 않았다. 주식 왕초보 동영상 선생이 시키는 대로 계좌를 개설하고 소액 투자를 해서 통닭 값을 벌긴 했으나 더 투자할 자금이 없으니 그것으로 그냥 끝이다. 소심하고 소심하여 리스크를 감당하면서까지 주식 거래를 할 배포도 없다. 그러니 주식에 영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아, 몰라. 그냥 검소하게 살던 대로 살면 되지 뭐. 나는 그냥 포기했다.




그렇다고 돈에 대한 욕심을 포기했냐, 하면 그건 아니다(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고,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단비처럼 여긴다. 어떤 날은 이만하면 됐지 뭘 더 바라냐,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어떤 날은 말할 수 없이 초라하게 마음이 쪼그라든다. 또 어떤 날은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태평한 얼굴로 스포츠 채널을 돌리고 있는 남편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크게 나아지질 것 같지 않다. 그러니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 밖에 도리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세상이 내놓은 답도 있다. 일단,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속을 끓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미리 겁먹지도 말아야 한다. 이 두 가지만으로 돈에 대한 걱정을 반 이상 줄일 수 있다. 나는 검소한 사람이므로 경영만 잘한다면, 하고 싶은 것을 소소하게 실행하면서 살 수 있다. 그럼 됐나? 그것이 과연 정답인가? 모든 인생의 문제가 그렇듯이 돈에 관한 답도 결국 그동안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다. 자의든 타의든 지금까지 나는 돈 앞에서 머뭇거렸다. 너무 솔직하면 세속적으로 보일까 봐(그게 나쁜 것도 아닌데), 너무 무심하면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나는 그저 머뭇거리며 외면해 왔다.




그 머뭇거림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며 살아온 결과이다. 며칠 전, 친구가 며느리에게 한 말을 들었다. "얘야, 내가 삶에 거품이 있어서 실용적인 사람이 못되었다. 너한테 해주고 싶은 건 많은데... 미안타." 그 말을 듣는 순간 찌릿했다. 친구가 말한 ‘삶의 거품’이란 말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그 비유가 참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음미(체)와 같은 아름답고 쓸모없는 것들을 좋아한다. 실속은 없지만 자기 멋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태도. 약간의 허세와 허영이 들어 있다는 걸 스스로도 아는 삶. 그것이 친구가 말한 '삶의 거품'이다. 나 역시 그런 거품이 꽤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어느 정도 ‘거품’을 지닌 삶을 살고 있다. 그 덕에 나는 스스로를 덜 초라하게 여기며 살아올 수 있었다. 반면에 돈과 관련된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오랫동안 그랬다. 그렇게 나는, 의식하지 못한 채 이미 돈에 관한 내 태도를 선택해 버린 것이다. 조금 외면하면서, 조금 체면을 지키는 쪽으로. 지금 나의 경제 상황은 그런 태도의 결과이다.




돈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자꾸 왔다 갔다 한다. 나는 돈을 욕망한다. 그러나 그 욕망이 나를 지배하길 원치 않는다. 돈에 무지했던 태도를 반성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덕에 조금은 자유로웠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여전히 ‘박봉 공무원’처럼 살고 있지만, 다행히 검소함을 방패 삼아 형편에 맞게 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돈에 대한 깨달음이 생길 줄 알았는데 이 나이가 되도록, 돈 앞에서는 여전히 작아지고, 머뭇거리고,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가끔은 주눅이 들고, 종종 체면 때문에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나는 돈이 좋고, 돈이 무섭고, 돈이 어렵다. '돈돈돈 거리고 돈을 좋아만 해야 돈을 얻을 수 있다는데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볼까?'. 이런 얘기를 동생들과 하며 낄낄댄다. 그러다가 마주 보며 '우리가?'하고 다시 낄낄거린다. 이제는 이렇게 돈에 대한 자조적인 농담도 한다. 돌아보면, 돈에 대해서 우물쭈물거리며 시종일관 일관성 없는 태도로 살았다. 이제와 어쩌겠는가. 그것이 나인걸. 그 모든 것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형편대로 가진 것 안에서 마음껏 살아보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도 현실적인 경제생활이다.
















keyword
이전 11화잠시 멈춰서는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