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탱한 말들
말은, 특히 타인이 '나'를 설명한 말은, 나를 규정짓는 힘을 지닌다. 인생의 여러 시기마다 누군가에게 들은 특별한 말들은 마음 깊숙이 새겨져 결국 나의 일부가 되었다. 어떤 말은 힘겨운 시간을 버티게 해 주었고, 어떤 말은 나를 흔들어 혼란스럽게 했으며, 또 어떤 말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오랫동안 품어온 말을 꺼내본다.
나를 꽤 오래 가르친 은사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한 말이다. 찬사와 모욕을 함께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는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저런 말을 했을까. 그때는 당황해서 물어보지 못했다. 오랫동안 그 의미를 곱씹었지만 결국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생의 험난함을 견뎌내는 제자를 대견하게 여긴 말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삶의 진지함을 알지 못하는 제자의 헐렁한 태도를 책망하는 말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늙은 은사 앞에서 해맑게 종알거리며 말 벗이 되어준 제자에게 그저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말 때문이었을까. 스무 살 무렵의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모두 겪어보고 싶어. 나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어. 깊어지고 싶고, 고뇌에 차 있고 싶고, 좀 더 무겁고 진지해지고 싶어.' 마치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후배가 한 말이다. 그와는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도 막힘이 없었다. 그와의 대화는 나를 자극하는 지점이 있었고, 종종 그에게 인사이트를 얻었다. "누나는 어려운 일을 어렵지 않게 잘하잖아요". 이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나를 위로하거나 용기를 주기 위한 말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많은 삶의 장면에서 이 말에 의지했다. 이 말은 힘든 상황에 매몰되지 않도록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어떤 문제 앞에서도 유연한 태도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 시절을 함께 보낸 후배는 떠나갔지만, 이 말은 마음속에 남아 나를 오랫동안 지탱해 주었다. 그리고 이 말 하나로 나는 그가 나에게 했던 잘못을 모두 용서할 수 있었다.
사는 게 고달팠던 시절, 거금을 들여서 '자기'(Self)를 탐색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다. 갈팡질팡 우왕좌왕하지 않고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나를 초전박살내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내 마음을 꿰뚫어 본 마스터가 말했다. "물처럼 흐르세요".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시큰둥했다. 뭐 이런 밋밋하고 흔한 말을 하시나 생각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억지로 거스르려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놓아두라는 말은 흔하고 흔해서 당시의 나를 자극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에서 자꾸 이 말이 떠올랐다. 쉽고 단순하지만 한없이 어려운 말.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갈팡질팡 하며 살고 있다. 그럴 때마다 이 말이 나를 슬그머니 제 자리에 데려다 놓는다. 조용히 등을 쓸어주는 느낌. 내가 사납고 거칠어질 때마다 조용조용 읊조리는 말이 되었다. "물처럼 흘러가자"
이 말은 내가 들은 말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 한 선배가 그의 지도교수에게 들은 말이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 인사를 하러 갔더니 지도교수가 이런저런 얘기 끝에 마지막으로 해 준 말이라고 했다. 공부를 대충 하지 말고, 철저하게 파고들라는 의미이지 않았을까 싶다. '원만하게 살지 마라'. 그 말에 마음이 끌렸다. 나는 상황에 따라 그 말을 해석하며 내 말로 삼았다. 때로 '아무렇게나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살지 말자'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나는 독야청청한 사람이 아니다. 집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융통성 있게 지낸다. 그런 태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저 말은 모든 관계 속에서 나를 '구겨지지 않게' 지켜 주었다. '내가 내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야, 더 이상은 안돼'- 비열하고 치졸해지는 선을 넘지 않도록 저 말은 나를 지켰다. 어쩌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말은 나로 하여금 도덕감을 잃지 않게 해주었다. '야비한 세상의 원리에 순응해서 망가지지 말라'며 나를 지켜 주었다. 나는 그렇게 이 말에 의지해서 세상 속에서 나를 지켜 냈다고 믿는다. 따라서 저 말은 나를 받쳐주는 든든한 기둥이라 할 수 있다. 저 말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선배의 맑은 눈빛은 고마운 덤이다.
이 말은 나의 퇴직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대학 동기인 J가 한 말이다. "잘했어"라는 단순한 말이 묘하게 마음을 안심시켰다. 애썼다고, 잘했다고 어깨를 토닥거려 주는 것 같았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받았다는 느낌도 들었다. 퇴직을 앞둔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덕담을 해주었다. 그 많은 말 중에 저 말이 마음에 닿았던 이유는 뭘까. 나는 "잘했어" 다음에 오는 말에 의미를 둔다. "지금까지 살아 온 힘으로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어". 친구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퇴직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여는 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 말은 비단 나에게 한 말은 아닐 터였다. 그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를 위한 말이었다. 나는 이 말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주문처럼 되뇐다. "잘했어, 지금까지 살아 온 힘으로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어". 이 주문을 외우다 보면 무엇보다 정말로 미래가 희망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