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에는 한밤중 잘못 걸려온 전화로 잠에서 깬 부부가, 중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할지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불안에 빠진 아내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한데 약속해 줄 게 있어. 만약 언젠가 필요한 때가 온다면 나한테서 플러그를 뽑을 거라고 약속해 주기를 바라. 결국 그렇게 되면 말이야. 내가 하는 말 듣고 있어? 이거 진지하게 하는 얘기야, 잭. 해야만 한다면 나한테서 플러그를 뽑아주기를 바라. 약속해 줄래?"
내가 남편에게 하는 말과 정확히 일치하는 말이었다. 이 말을 꺼낼 때마다 남편은 오지 않은 일을 왜 미리부터 걱정하느냐고 투덜거렸다. 그러면 나는 또 볼멘소리로 대꾸를 했다. "왜 안 와.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고. 구질구질하게 죽고 싶지 않을 뿐인데 그걸 못 들어줘?" 그러면 남편은 침묵했다.
생각해 보면, 죽음에 대해 개인이 준비할 수 일은 거의 없다. 질병을 피할 수도 없고(노력은 할 수 있겠으나), 죽음을 막는 것 또한 가능하지 않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무기력하다. 남편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우리의 무기력을 굳이 확인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계기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를 꺼냈다. 세뇌가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반복되는 말을 듣기 싫었는지, 남편이 마침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자고 먼저 말을 꺼냈다. 요양병원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있는 친구의 모친 이야기를 하면서. 미룰 이유가 없었다.
사전에 관할 보건소에 신청의사를 알리고 다음날 보건소를 방문했다. 같은 이유로 방문하는 사람이 많은지 보건소 입구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은 보건행정팀에서 한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나의 죽음에 관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행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씁쓸했다. 보건행정팀 사무실에 들어서니 누군가 구석에 놓인 작은 테이블로 안내를 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하러 오셨지요?" 늙지도 젊지도 않은 부부의 방문 목적이 그것밖에 더 있겠다는 듯 직원은 우리가 입을 열기도 전에 담당자를 불렀다. 안내를 받은 테이블 위에는 홍보 브로셔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담당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친절하고 사무적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익히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끝까지 설명을 듣고 해당 사항에 체크하고 사인을 했다. 보건소에 방문해서 전자 서류에 사인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았다. 행정 절차에 따라 설명을 듣고, 사인을 하면 되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뭘 그렇게 말씨름을 했나,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남편도 머쓱했던지 "아주 간단하구먼." 한마디 했다. 기념할 일도, 감정이 흔들릴 일도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점심으로 뭘 먹을지 고민했다. 날이 너무 더운데, 냉면이나 먹으러 갈까? 죽음을 이야기하고 나왔는데 남편과 나는 평소처럼 점심 메뉴를 고민했고, 저녁에 볼 넷플릭스 시리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죽음에 관련된 서류에 사인을 하고도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불안해하지 않고, 무엇보다 감상이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상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죽음을 준비했다기보다 죽음에 직면해서 하게 될 선택을 미리 한 것뿐이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 가벼웠다.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에서 아내는 내내 질병과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 시달린다. 나도 종종 불현듯 찾아올지 모를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제 죽음을 불안을 키우는 어둠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한다. 이제 일상으로 내려온 죽음과 함께 살 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러니 2025년 7월 9일은 무의미한 죽음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작은 선택을 한, 그저 그런 일상적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