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영 인터뷰를 보고 쓰는 글
우연히 브랜드 컨설턴트 노희영의 인터뷰를 보았다. 육 십 세가 넘어서도 트렌드를 앞서가는 모습,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 그리고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그의 자본력이 부러웠다(=질투 났다). 반쯤 삐딱한 마음으로 보다가 육십 이후의 삶의 방향을 말하는 지점에서 뾰족해진 마음을 거두었다.
일 세부터 삼십 세까지는 누군가에게 키워지는 삶이다. 삼십 세부터 육십 세까지 내 의지로 딱 1기를 산 것이다.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 지금부터 한 번 더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육십부터는 챕터 2가 시작되는 것이니까, 챕터 1과는 다른 세상을 살아야 한다. 챕터 1은 나의 꿈, 나의 욕구를 위해 살았다면 챕터 2는 공익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돈벌이를 하든 뭘 하든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을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에게도 나는 나누는 삶을 살겠다, 내 인생을 봐달라, 육십이 되면서 달라질 것이다,라고 공표를 했다.
그의 스타일대로 거침없이 말하는 모습을 보는데 어떤 말이 귀에 파박하고 들어왔다. 바로 '공익적인 삶'이었다. 뭐야! 자본주의의 첨단에서 살고 있는 듯한 사람이 공익이라고? 자본주의 시장에서 어떻게 하면 상품을 많이 팔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공익이라고? 그는 '공익'을 어떤 맥락에서 사용한 것일까? 어쨌든 그가 육십 이후에 지향하는 삶은 나와 달랐다. 이 브런치북에서 종종 밝혔듯이 나는 육십 이후에 오직 나의 욕구에 충실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고 그것을 실천하는 중이다. 그것도 조심스럽게. 그런데 저 여자는 공익적인 삶을 살겠다고 한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지켜봐 달란다. 저 끝간 데 없는 자신감은 뭐란 말인가.
'공익적인 삶'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환갑에 세운 나의 목표,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결심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기적인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챕터 1기에 의무에 충실한 삶을 사느라 욕구 따위는 잊고 살았다는 변명이 '공익적인 삶'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어떤 패배감(?)을 구원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공공연하게 공표한다. 그런 삶을 살겠다는 결심도 결심이려니와 그 결심을 주변에 알리고 지켜봐 달라고 한 그의 태도가 놀라웠다. 나도 공공연하게 사람들에게 떠들어대긴 했다.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거라고. 각자 살아온 역사가 있으니 그와 나의 삶을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가 말한 '공익'은 자신이 가진 사업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나눠 준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공익을 말할 때 나는 작아졌다.
그래서 '공익적 삶'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에 파장이 일어난 이유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왜 그 말에 걸렸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삶은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이미지 한 부분을 차지하는 소양이다. 그런데 지금 나의 삶에 그 가치가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너무도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공익이라니. 잊고 있었던 단어였다. 노희영이 그것을 깨우쳐 준 것이다. 며칠 동안 핑계를 댔다. 그와 나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삶을 살았다, 젊었을 때 제멋대로 산 사람이니 나이가 들어서는 사회적인 가치를 삶의 중심에 두고 싶었겠지, 게다가 돈이 많잖아,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이런 핑계를 대다가 들켜버린 것이다. 내가 저 고리타분한 단어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다는 것을. 어설픈 자유인의 흉내를 내며, 억압에서 풀려났으니 마음대로 살아보자 하고 있다는 것을. 물론 나도 공익적 삶을 생각한다. 내 생활이 침해되지 않는 선에서 '소극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노희영처럼 큰 소리로 말할 수가 없다. 나의 태도는 거기까지다.
[덧]
노희영의 공익적 삶과 내가 생각하는 공익적 삶은 다른 듯하다. 그가 지향하고자 하는 삶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달하고 그들의 성장을 돕는 일로 보인다. 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가 일해온 '시장'에 관심이 있고,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성공을 하고 싶은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스스로 '공익적인 삶'이라 지칭한 것도 하나의 사업으로 접근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그가 혹시라도 브랜드 컨설팅에 관련된 학교를 세운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사그라들지 않은 에너지를 갖고 있으며, 끊임없이 트렌드를 분석하고 또 이끈다는 점에서 그를 부러워한다. 나이가 들면서 또 다른 차원으로 생각을, 삶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그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공익적 삶'이라는 표현은 좀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공익은 公益인 것이다. 인터뷰에 대한 나의 오해(독) 일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한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그의 '공익'이라는 단어에 걸려 넘어졌다. 넘어진 자리를 살피고 나의 생각을, 나의 삶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하는 일은 나의 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