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나가려고 합니다. 오늘도 당신을 만나게 될까요? 문밖을 나서며 생각을 가다듭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당신과 당신의 소중한 존재를 만나게 된다면 가벼운 인사를 나누리라."
나는 당신을 미워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소중한 존재가 나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저기 멀리 당신의 소중한 존재가 등장하면 나의 몸은 경직됩니다. 어떨 때는 제 자리에 멈춰 서서 당신과 당신의 소중한 존재가 지나갈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좁은 숲길 가장자리로 비껴 서서 당신들이 나에게 멀어질 때까지 조신한 태도로 서 있곤 하죠. 어떨 때 당신은 가벼운 목례로 당신에게는 배려로 비췄을 나의 태도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당신은 나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무시하죠. 그럴 때 나는 분노를 느낍니다.
나의 분노는 당신의 소중한 존재를 향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날카롭게 말했지요. "왜 목줄을 달지 않죠?" 당신은 말했습니다. "우리 애는 물지 않아요." 멀어져 가는 당신과 당신의 소중한 존재를 노려보았습니다. 또 한 번은 눈이 내리는 겨울이었습니다. 꼬리를 흔들며 이리저리 뛰노는 당신의 소중한 존재를 당신은 연신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 한 복판에서 말이죠. 당신에게 말했죠. "저 여기로 지나갈 겁니다" 당신은 처음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당신의 소중한 존재를 바라보던 시선과는 정반대 되는 시선으로 저를 흘끗 쳐다보더니 소중한 존재를 품에 안았지요. 어느 날의 당신은 드디어 소중한 존재에게 목줄을 달았더군요.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소중한 존재가 나의 발끝까지 달려와도 제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분노가 서글픔으로 바뀌었습니다. 소중한 존재와 함께 산책을 하던 젊은 주인은 내가 지나갈 때까지 그의 소중한 존재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 반대였던가.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자신의 몸으로 소중한 존재와 나 사이에 가드를 쳐주었지요. 언젠가 길가에 멈춰 섰던 나에게 가벼운 목례로 답한 사람들도 젊은 그들이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나를 분노하게 했던 당신들의 연배가 모두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요. 젊은 주인과 그들의 소중한 존재 옆을 지날 때 나는 불안감이나 불쾌감을 거의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그들의 소중한 존재를 혹은 나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당신, 당신은 여전히 우리 애는 얌전해요, 우리 애는 물지 않아요, 를 반복했죠.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참으로 해맑았습니다.
그것이 서글펐습니다. 당신은 무례합니다. 악의 없이 무례하고 해맑게 무례하고 내가 당신과 같다고 생각하며 무례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당신에게 분노하지 못합니다. 서글픔은 분노 대신 당신을 향한 연민을 만들어냈습니다. 늙어가는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했지 않습니까. 당신과 나의 연배가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부터 서글퍼졌다고.
당신은 여러 장소에서 발견됩니다. 아파트 휘트니트 센터에서 운동 기구를 차지하고 앉아서 허리에 좋은 운동과 건강에 좋은 영양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지요. 그러느라 당신은 그 기구를 기다리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어제는 커피숍의 어린 직원에게 반말을 하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역시 당신은 어두워진 직원의 표정을 보지 못하더군요. 지하철에서 당신은 왜 그렇게 큰 소리로 통화를 하십니까. 해맑게 무례한 당신. 나는 당신이 당신을 바라보는 나를, 당신 곁의 누군가를 좀 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해맑음이 누군가를 불편하고 불쾌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산책길에 만난 당신과 아파트 휘트센터에서 만나는 당신과 지하철과 커피숍에 만나는 당신과 더 이상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습니다. 특히, 산책길에서 당신과 가벼운 인사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조금만 서로를 봐주면 어떨까요. 산책길의 당신은 당신의 소중한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조금만, 아주 조금만 나를 배려하고, 나는 당신에게 보통의 인사를 건네는 방식으로요. 아는 사람의 소중한 존재는 모르는 사람의 그것보다 조금 덜 불편한 마음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서로 안쓰러운 마음으로 조금만 서로를 봐주기로 해요. 그렇게 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