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시 쓰는 중
간간이 참석하는 모임에 다녀온 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살짝 공적인 성격을 지닌 모임이다. 구성원의 나이도 4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하다. 햇수로는 오래되었지만 사적인 이야기, 특히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어찌어찌하여 1박 2일 워크숍 형식의 모임이 마련되었다. 저녁에 고기와 술이 오가자,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누가 먼저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K가 한 말은 정확하게 기억난다.
나이가 들면 자기 언어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해
수장 격인 K는 지금까지 자기가 해온 일들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K는 그동안의 경력을 일일이 나열한 뒤, 그 일을 영문 이니셜로 조합해서 명함에 새겼다고 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그의 말에는 묵직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P는 SKY출신들이 즐비한 조직 안에서 기죽고 우울했던 시절, 스스로를 탐색하며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하고 있는 일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K와 P의 말을 듣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나에겐 K와 P처럼 사회적으로 또렷하게 나를 설명할 언어가 이젠 없다. 직업으로 나를 설명하는 시절은 끝났기 때문이다. 퇴직하면서 명함을 모조리 세단기에 넣어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 자부심을 가지고 해 왔던 일이었으나, 퇴직 후에 그 일을 연장해서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리하여 한 때 나의 직업정체성을 구성하던 일은 퇴직과 함께 나에게서 빠져나갔다. 사회적 역할에 기반하여 설명할 정체성이라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K와 P의 자부심과 자신감 앞에서, 나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쪼그라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정체성을 이야기하던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회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는 느낌, 내 능력이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인가 라는 자괴감, 남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어가고 있는데 나는 그저 놀 궁리나 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한심함, 그 모임에서 내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기소침함. 온갖 감정이 불쑥불쑥 올라와 지금 겪고 있는 사소한 고민들과 뒤섞여 얽히고설켰다. 결국 새벽녘까지 잠을 못 자고 뒤척였다. 환갑에 이럴 수도 있구나. 내 나이 예순 하나, 환갑 나이에 자아정체성이라니. 정체정에 대한 고민을 이 나이까지 해야 할 일인가 말이다. 다음 날에도 머리가 무거웠다. 불편한 마음을 그대로 둔 채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K와 P는 지금 활동하고 있는 ‘장(場)’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말한 것이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나 역시 일 속에서 나를 찾았던 시간이 있다. '나이가 들면 자기 언어로 내가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K의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단정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하여 어느 한 시기에 설명한 '나'는 내일의 '나'가 아닐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성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나는 이제 타인이 설계한 무대에서 내려와 다른 무대에 서야 한다. 새로운 무대에서는 새로운 언어로 나를 말하게 될 것이다. 어떤 무대일지는 모르겠으나, 그 무대에서는 또 다른 모습과 그에 어울리는 역할과 언어를 얻게 되리라는 믿음이 있다. 지금 나는 무대를 만들어가는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나에게 맞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채워가는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무대를 만들고 그 위에 설 때, 나는 분명 새로운 언어로 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체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므로.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므로. 나도 궁금하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무대에 서게 될지.
*때로, 내가 한 말( 05화 여전히 무럭무럭 자라고 싶은 마음) 이 나를 위로해 준다. 나는 성장 중이다. 이 나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