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에는 유창하게 말 할 수 있겠지

영어공부의 기록

by 시원

퇴직을 한 사람들은 뭔가를 배우러 다닌다. 일단, 운동을 시작으로 그림을 그리고, 외국어 공부를 하고, 등산을 하고, 라인댄스를 한다. 출퇴근으로 다져진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서 그런지 비어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 대열에 합세하여 집 근처 대학의 평생교육원 영어 강좌에 수강 신청을 했다. 외국어 하나쯤은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두 학기만에 그만두었다. 평생교육원에는 사교를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울려 밥을 먹고, 때가 되면 강사에게 인사치레를 하고, 오래 수강한 사람들과 신규 수강들 사이에 묘한 권력 관계도 형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수강생들과 익숙한 관계를 형성한 강사는 수업 시간에 잡담이 많았다. 영어 공부에 대한 동기 부여를 핑계로 이상한 훈계를 덤으로 들어야 하는 날도 많았다. 수강생들을 잡아두려는 의도였겠으나 나에게는 부작용을 낳았다. 더 들을 필요가 없겠다 싶어서 딱, 그만두었다. 그래, 인정한다. 나이가 들어도 사그라들지 않는 까탈스러운 성격 탓이다.




그래도 영어 공부는 계속하고 싶었다. 몇몇 유튜브 채널을 탐색해 보기도 하고, 영어 공부 모임을 수소문하기도 했지만 마음에 드는 채널이나 모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투덜거렸다. '우리가 공부를 적게 한 것도 아닌데, 영어 하나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말이 되냐? 이 나이에 영어 공부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전직 영어교사였던 친구는 '새삼스럽게 다 늙어서 영어는 해서 뭐 하려고'하면서도 회화 앱을 소개해 주었다. 바로, 앱을 다운로드해서 매일 30~40분씩 영회 회화 공부를 시작했다. 나에게는 '외국어 하나쯤은 잘하고 싶다'라는 오래되고 막연한 희망사항과 남아도는 시간이 있었다.




앱으로 회화 공부를 시작한 지 6개월쯤 되어간다. 기초 회화부터 여행 영어, 그리고 원어민처럼 말하기 회화까지 앱에서 안내하는 대로 꾸준히 하고 있다. 처음에는 너무 재미있어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앱을 소개하고, 이것이 얼마나 신통방통하게 나의 회화 실력을 향상해 주는지 설파하기도 했다. 흥이 잔뜩 오른 날에는 아침에 한 번, 저녁에 또 한 번, 하루에 두 번씩 공부를 했다. 여행지에서도 빠지지 않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다 늙어서 어디에 써먹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하냐'는 반응을 보였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왜냐니, 그 질문에 안성맞춤인 답이 내게는 없다. 영어 공부가 당장의 소용에 닿는 것도 아니어서 질문한 사람에게 만족스러운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저 우스갯소리로 '치매 예방차원이야'라고 말하거나 '그냥 시간이 많아서'라고 말하곤 했다. 공부에 때가 있는 것도 아닌데(때가 있나?) 이 나이에 영어 공부 좀 한다고 그런 질문을 받을 일인가 싶다. 분명한 한 것은 영어 공부의 소용과 목적 대신 즐거움과 변화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면 눈을 반짝였을 것이다.




처음, 회화앱을 켜고 프로그램이 시키는 대로 문장을 발화하면서 내 발음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알았다. 얼추 비슷하게 발음한 것 같은데 화면이 다음 단계로 이동하지 않았다. 단어 하나를 수차례 발음하고 나면 어쩌다(정말로 어쩌다) 제대로 된 발음이 나온다. 그러면 그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또한 원어민처럼 혀를 굴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까지 심리적 저항감도 만만치 않았다. t를 정직하게 t로, p를 정직하게 p로 발음해야 속이 시원했다. 게다가 단어 하나하나의 발음에 신경을 쓰다 보면 간단한 문장을 말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발음에 신경 쓰면 문장이 엉기고, 문장에 신경 쓰면 발음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장벽들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재미로 느껴졌다. 토플 시험을 볼 것도 아니고 영어 연설이나 인터뷰가 잡혀있는 것도 아닌데 열과 성을 다해 공부를 했다. 목적 없는 공부가 이렇게 재미가 있다(성적 향상이니, 대학진학이니 심지어 훌륭한 사람이니 하는 목적 없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안내해야 한다. 잠깐 딴소리). 그 '재미'가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그것, '매일매일 조금씩'을 실천하게 했다. 이 나이에도 영어 공부를 재미있게 즐겁게 할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이야.




매일매일 영어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내가 꽤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 '성실한 사람'이라는 자각은 환갑을 앞둔 나이에도 뿌듯함을 안겨 주었다. 과거에도 사람들로부터 성실하다는 말을 종종 듣긴 했다. 그러나 성실하다는 타인의 평가적 발언이 나에게 울림을 준 기억은 없다. 그러나 스스로 인정한 성실함은 나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만든지 새로운 영역에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덤으로 가져다주었다. 요즘은 혼자서 어학연수를 떠나는 상상을 한다. 실제로 영어권의 도시들을 탐색하며 어학연수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기도 한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영어 공부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짜릿한 기분이 든다.




영어 공부를 즐겁게 한다고 해서 회화 실력이 비약적으로 느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후진 발음으로 어설픈 문장을 구사한다. 조금 복잡한 문장이 제시되면 버벅거리느라 말할 시간을 놓치고 만다. AI 선생과 프리토킹을 할라치면 그동안 연습해 온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된다. '음...', '아...', 그리고 '아임소리'와 '익스큐즈미'를 반복하다 보면, 성실한 사람은커녕 그냥 아둔하고 멍청하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좌절하지 않으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조금 받나?) 짜증 내지 않는다. 그저 순박하고 촌스러운 발음으로 더듬거리며 나아간다. 오히려 이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칠십에는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유창하게 표현할 수 있을 거야, 하며 격려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앱을 켜고 불꽃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간단한 문장을 반복해서 말하고 또 말한다. 지금 보다 조금은 더 멋있어질 일흔의 나를 위해서. '아임소리'와 '익스큐즈미' 대신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하고 있는 칠십 세의 나를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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