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부부가 사는 법
지난달에 동생들과 환갑 기념 여행을 다녀왔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함께 움직였는데, 대부분 부부와 친구로 구성된 팀들이었다. 그중 유독 한 부부가 눈에 띄었다. 50대 중반이 되었으려나. 항상 손을 꼭 잡고 다녔고, 앉을 때는 남편이 아내가 앉을자리를 미리 살펴주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애틋하게 마주 보면서 웃거나 입을 맞추기도 했는데 취하는 포즈마다 애정이 넘쳤다. 그들의 애정행각(?)은 다른 일행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급기야 막냇동생은 그들이 부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폈다. "저 나이에 너무 다정하잖아. 어떻게 나이 든 부부가 저래?" 왜 애먼 사람들을 모략하냐고 핀잔을 주자, "최소한 만혼이나 재혼 부부일 거야"라는 말로 한걸음 물러났다. 부부가 다정해야 정상 아니냐, 했다가 "네네~ 그러셔요~"라고 핀잔을 들었다.
집에 두고 온 남편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함께 왔더라면 저 남편 못지않게 살뜰하게 이것저것을 챙겼을 사람이다. 나의 남편은 다정하고 섬세하다. 기념일을 잊지 않고 챙기며, 먹고 싶다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고 사다 준다. 꽃도 잘 사 오고, 손편지도 잘 쓴(썼)다.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다는 일을 반대한 적이 없다. 그런 성품이 좋아서 결혼했다. 반면, 사람 좋아하고, 좋아하는 만큼 잘 믿고, 그런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용도 당하고 급기야 사기도 당하고, 뭐 '그렇고 그런' 스토리도 있다(구구하게 이야기하지 않겠다. 생각하면 우울하다). '그렇고 그런' 사건을 거칠 때는 사람 잘 챙기는 그의 장점이 오지랖으로 느껴졌다. '너의 오지랖 때문에 나의 심신이 이렇게 고달프구나.' 그도 나도 한동안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 회복?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여태 함께 살고 있다. 어떨 때는 데면데면하게, 어떨 때는 다정하게, 어떨 때는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남편 보다 내가 먼저 퇴직을 했다. 퇴직을 하니(너무 좋았다), 여전히 일하고 있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힘들면 명퇴를 하는 게 어때?"(아 진짜, 나는 생각이 없다) 운을 띄웠을 뿐인데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며칠 후 명퇴 신청을 하고 다음 해에 퇴직을 했다(아 정말, 남편은 더 생각이 없다). 퇴직한 남편은 아주 즐겁다. 문제는 나. 구부정하고 볼품없이 늙어버린 (중) 늙으니와 한 집에서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너무 길다. 디자인이나 공간예술에 여백의 미가 있다면, 사람에게는 부재의 미가 있는 법인데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느낄 틈이 없다. 어쩌다 남편이 친구들과 운동 일정을 잡으면 좋은 기분을 감추지 못한다. 잘 다녀오라고 말하면, 남편은 그 말에 담긴 뜻을 기가 막히게 알고 웃으며 말한다. "신난다고 경거망동하지 말고, 잘 지내고 있어".
그렇다. 세상 가장 피곤한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감정적으로 밀착되어 있는 관계일수록 피로도가 높다. 오만 서른일곱 가지 감정을 겪으며 함께 살아온 부부는 오죽하겠는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언사와 사람이 사람에게 품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경험한 후에 깨달은 것이 있다. 애쓰고 노력하지 말자. 남편과의 관계를 포함해서 사람에 대해, 나는 이제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나대로 살다가,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다가 만나지면 만나는 것이고 헤어지면 헤어진다는 생각으로 사람을 대한다. 관계를 잘 보살피려는 노력은 가치 있고 훌륭한 것이지만 유지하려고 애쓰는 관계는 힘들고 고단하다. 힘들고 고단한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나를 왜곡한다. 굴절된 내 모습이 상대방의 진심에 닿을 수 있을까. 애쓰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관계, 그것이 내가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남편에 대해 선택한 태도이다. 애쓰지 않는 대신 나는 남편을 친절하게 대한다. 친절이야 말로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자연스러운 마음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쉬운 마음만으로도 부부간의 많은 문제가 사라지는 걸 느낀다.
퇴직한 60대 부부에게는 무엇이든 꼭 함께 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 모처럼 함께 보려고 고른 영화가 재미없으면 나는 조용히 책을 들고 서재로 들어간다. 내가 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남편은 자신의 입에 맞는 음식을 스스로 해 먹는다(나이에 비해 가부장적 권위가 없는 편). 남편은 남편의 취미를 즐기고, 나는 나의 취미를 즐긴다. 그러다가 마음이 맞으면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거면 됐다. 환갑에 이르러서야 남편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사라졌다. 그 대신 요동치지 않는 '무심한 신의'가 친절함을 매개로 남편과 나를 연결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도 남편의 부재를 고대하는 마음과 모순되거나 부딪치지 않는다. 다행히도 말이다.
* 여행지에서 만난 애인 같은 부부는 동생의 생각과 달리 장성한 아들을 둔 진짜 부부였다. 남편이 오랫동안 해외근무를 했다고. 함께 살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그 기념으로 함께 여행 중이라고. 역시 부재의 미를 아는 부부에게는 사랑과 애정이 강물처럼 흘러넘친다. 축복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