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까칠한 할머니가 될 것 같다

에필로그

by 시원

한동안 'ㅁㅁㅁㅁ 할머니가 되고 싶어', '장래희망은 ㅇㅇㅇ한 할머니' 등의 제목을 단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할머니'라는 존재가 가진 전통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신이 바라는 노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생긴 현상이다. 반가운 한편,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움이 아닌 희망의 형태로 표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희망과 소외감을 동시에 느낀다. 아직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겠다는 의욕과 용기가 있다 점에서는 희망을 느끼지만, 그러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이 나에게 있는지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우울해진다. 그러나 두 가지 상반된 감정 중 희망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어쨌든 잘 살아가야 하니까.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육십 세를 갓 넘은 나는 아직 장래희망을 품어도 된다.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가? 이렇다 할 꿈이 없이 육십 평생을 살아온 지라 특별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나이 들어가는 모두의 바람대로 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 정도가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가? 이 질문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혹은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이렇게,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을 '지금'을 살피는 질문으로 치환하면 조금 더 예측가능한 답을 할 수 있다. 또한 내가 어떤 할머니들에게 매력을 느끼는지 관찰하면 조금 더 현실적인 답을 할 수 있다.




좋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노인을 보면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옷을 맵시 있게 차려입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걷는 노인, 도서관에서 물 한 병을 앞에 두고 독서삼매경에 빠진 노인, 출입문을 잡아 주었을 때 웃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노인, 혼자서 카페에 가고 식당에 가는 노인, 예쁜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 노인 등등 열거하면 끝이 없다. 그런데 기억 속에서 구체적인 인물이 떠올랐다. 그 할머니는 지하철 노인석에 앉아 있는 남성에게 말했다. "저기요, 여기는 노인석이에요. 일어나 주세요." 화가 난 말투도, 가르치려는 말투도 아니었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말투로 할머니는 말했다. 주저함도 흔들림도 없었다. 차림새도 평범했다. 그 할머니의 잔상이 오래 남았다. 자리를 '양보해 달라'라고 하지 않고, 담백하게 '내 자리야'라고 말하는 태도에는 노인이라는 피해의식이 없고, 주눅도 들어있지 않았다. 오래전 일이지만, 저렇게 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인이 된 나를 인정하고, 사회에서 내가 누릴 권리를 자연스럽게 누리고, 나의 생각이나 의견을 담담하게 말하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모습. 나는 그런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다.




나는 나의 미래를 과장하고 싶지 않다. 현재의 모습대로 나이 들어간다면, 나는 아마 까칠한 헐머니가 될 것이다. 몸에 편한 옷을 내 취향대로 차려입고, 에코백에 물 한 병과 책 한 권을 넣고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혼자 밥집에 들어가 조용히 식사를 마치는 그런 사람. 주문한 음식이 다르게 나오면 정중히 다시 해달라고 말하고, 지켜야 할 규칙이 무시되는 순간엔 조용히 지적하는 사람.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조금 까다롭고 예민한 노인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 같은 것 이를테면, 노인들은 너그러워야 한다든가, 무릇 할머니는 모든 것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줄 것이라는 관습적인 기대에 맞춰서 살고 싶지는 않다. 나이가 들면 지금보다 조금 더 여유 있는 품을 갖게 될 것이라 믿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나의 예민한 감각을 잃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뾰족하게 나의 감각과 취향을 다듬어 나가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지금을 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까칠한 할머니가 될 것 같다'. 그 까칠함이 때로 불편해 보여도, 믿을 만한 어른의 태도라고 우겨본다. 동의하지 않는대도 할 수 없다. 나는 나대로 나이 들어갈 것이므로.



* <환갑, 잔치가 시작됐다>의 연재를 마칩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차오르면 다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15편의 거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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