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마와 마리암

나는 어느쪽인가.

by 시원

재미있는 자매들 이야기를 해야겠다. 사우디에서 온 아스마와 마리암은 자매이다. 너무 닮아서 처음에는 쌍둥이인줄 알았다. 그런데 성격은 정 반대이다. 언니인 아스마는 조용하고 성실하다. 수업에 늦지 않고, 숙제를 거르는 법이 없다. 아스마는 자주 내 옆에 앉는데, 처음 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내가 저와 비슷한 실력을 가졌다고 판단한 것 같다. 수업 중에 리엔은 자주 같은 테이블에 앉은 파트너와 문제를 맞춰보게 한다든가, 가상 인터뷰 게임을 하게 하는데 아무래도 비슷한 사람끼리 하면 편한 점이 있다. 아스마는 단어의 의미를 묻거나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데 내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시원, 이게 왜 틀린 거야?"

"음...보자, 여기서는 과거가 아니라 과거완료를 써야해"


나도 종종 아스마의 도움을 받는다. 여기에 와서도 어쩔 수가 없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편하다. 굳이 이런 습성을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또 어쩔 수 없이, 나와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친구들에게 매력을 느낀다.


아스마의 동생인 마리암은 애칭인 미미로 불린다. 미미는 수업에 자주 늦는다. 결석도 잦다. 어떤 날에는 첫 시간이 끝난 다음에 천연덕스럽게 나타나기도 한다. 리엔이 왜 늦었냐고 물으면 슬며시 웃으며 말한다.


"teacher! I'm here. I'm hear"


리엔은 언제나 미미의 웃음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미미가 지각을 했을 때 리엔을 보고 웃는 모습을 보면 내가 선생이래도 혼을 낼 수 없을 것 같다. 감정에 기복이 없는 아스마에 비하면 미미는 그때 그때 자기의 감정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편이다. 수업내용이 쉬우면 'easy! easy!'를 연발하고, 어려우면 금방 지친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손을 들고 'teacher! teacher!'를 외쳐댄다. easy, easy/ teacher, teacher. 미미는 항상 단어를 두번 연속으로 말한다. 자기 애칭처럼.


한번은 미미와 인터뷰하는 역할극을 하는데, 내가 이름을 Mimi로 잘못 적었다(미미는 자기 이름을 Meme로 표기했다). 미안하다고 하고 바로 수정을 하려는데, "No, No that's ok, that's ok."라고 역시 단어를 두번씩 말하며 손사레를 쳤다. 이걸 쿨하다고 해야 하나, 잠깐 생각하다가 나도 "ok, ok" 로 응수했다. 배운 걸 안배웠다고 하고(전세계 학생들의 공통된 특징),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휴대폰을 충전해야 한다고 수선을 떨고, 퀴즈에 답할 차례가 되면 우리쪽 테이블을 보며 아스마, 아스마를 외치며 답을 요구하는 모습은 꼭 청소년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다.



한 번은 금요일 마다 보는 시험에서 미미가 내 답안지를 채점한 적이 있다. 그 주에는 몸이 안좋아 병원에 가느라고 두 번이나 결석을 한 상태였다. 시험 성적이 좋을리가 없었다. 그러나 미미는 내 답안지를 흔들며 다가와서 말했다.


"시원, 너 시험 엄청 잘봤어!"

"지금까지 중에 제일 못한 거야."

"뭐라고? 이 정도면 너는 천재야!"

"오~ 미미"


그 점수에 천재라니, 미미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곧 반성했다. 아, 시험이 뭐라고. 점수가 뭐라고. 뼈 속에 박혀있는 한국교육의 흔적과 온 몸을 관통하는 점수위주의 사고방식. 내가 늘 비판해 왔던 것이 내 몸속에 깊이 박혀 이곳에서 나의 태도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수시로 다양한 친구들이 오고가는 어학원 생활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학교에 다니듯이 수업에 빠지지 않고, 숙제를 꼬박꼬박 해가며, 매일 정해진 자리에 앉아서 내 마음에 맞다고 생각한 친구들하고만 소극적으로 교류했다. 어학원 친구들과 사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주말 프로그램에는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번은 아스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아스마, 미미는 어디갔어? 오늘도 수업에 안와?"

"이따 올꺼야. 걘 자주 딴 데로 새"


아스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마 미미가 매신저로 불러내면 조용히 나가서 데리고 들어올 것이다. 두 자매는 늘 즐겁다. 아스마가 수업을 빼먹는 미미에게 뭐라고 충고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미미는 미미대로 아스마는 아스마대로 어학원 생활을 즐긴다.


나는 애초에 어느쪽이었을까. 아스마 편에 앉아있으면서도 눈으로 미미를 쫒는 것을 보면 미미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한국교육은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푸하하하. 이 나이에 또 제도 탓! 남 탓, 제도 탓이라도 해야 지금의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어쩌랴.


내일은 미미 옆자리로 옮겨볼까. 근데 걔가 내일은 수업에 제 시간에 오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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