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만들어가는 것일까?

by 빵집알바생

새해 운세로 한 타로카드를 선택하였더니 ‘종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내게 적용해보면, 배정된 집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일까?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것도 없을 것 같다.


나는 사주, 타로, 별자리 운세를 즐겨 보는 편이다. 누군가는 허황한 것을 믿어서 뭐가 좋냐고 물어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믿음의 문제로 접근할 게 아니다. 불길한 점괘가 나오면 그날 조금 더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 좋은 점괘가 나오면 언제 그 일이 일어날지 하루하루를 기대하며 살아가면 된다. 이렇게 운세로 하루하루를 시작할 때면 자연스럽게 운명은 정해져 있는 건지, 아니면 만들어가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운명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자. 스티븐 호킹은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길을 건너기 전에 좌우를 살핀다.’라고 말했다. 또한 성공한 사람들의 연설문에는 ‘우리의 운명이 이미 짜여 있다면 그것만큼 허무할 건 없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하지만 나는 이 사람들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운명은 정해져 있다.


내 관점으로 보면, 스티븐 호킹이 본 사람들이 길을 건너기 전에 좌우를 살핀 것도, 그 사람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예로, 불우한 환경 속에서 살아온 어린아이가 ‘이런 삶 속에서 살 수 없어. 운명은 내가 개척하는 거야.’라고 해서 성공한 인물로 거듭났다고 하자. 운명이 개척 가능하다고 믿고, 노력해서 성공한 것도 그 아이의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운명의 사전적 정의는 ‘이미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이다. 애초에 운명이라는 단어에 ‘바꿀 수 있다’라는 서술어가 들어갈 수 없다.


허탈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우리는 왜 노력하는가? 왜 정해져 있는 삶을 아등바등 살아갈까?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더 해보겠다. 운명이 이미 짜여 있다 해도 그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있는가?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들이 과연 허무한 일일까?


우리의 운명이 이미 짜여 있다고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은 보통 삶을 허탈하다고 간주한다.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다.’라고 불편함만을 표출할 수밖에 없는 것까지 운명으로 치부하면 당신은 거기까지인 것이다. 그렇게만 불평할 수밖에 없는 당신의 단점을 더 불편해하여야 한다. ‘노력해봤자 확정된 삶’은 없다. 노력해서 달라지는 삶, 그 자체가 우리의 운명으로 설계된 것이다.


거듭 무언갈 시도하고 그게 잘되지 않았을 때,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기서 한 번 더 일어서는 사람에게는 실패라는 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난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야.’ ‘내게 주어진 것을 바꾸기엔 내가 너무 부족한 것일까?’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라고 생각하지 말자. 역경을 겪어야 하는 것도 운명이었던 것이다. 당신을 위해 좋게 설계되어있는 삶 안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고비일 뿐이다. 계속 딛고 일어서다 보면, 당신은 정말로 그만큼 큰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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