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할아버지가 계신 곳의 위치를 들었다.
나는 동생을 깨워, 급하게 검은 정장을 입고 80번 버스를 탔다.
임종은 지켜드리지 못했다. 버스를 타고 30분을 갔던가. 정확한 기억은 없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수척해진 아버지의 얼굴을 먼저 만났다.
아버지의 눈은 빨갛게 부어있었다. 커다란 사진 속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계셨다. 아버지는 내게 육개장 한 그릇을 권하셨다. 딱히 먹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씹어 삼켰다.
몇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왔다. 개중 몇 분은 울고 계셨고, 몇 분은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
아버지는 이따금씩 큰 소리를 내며 우셨다.
울다가 조문객을 맞고, 조문객들과 얘기를 나누며 웃다 또 다시 우셨다.
나는 할아버지를 뵙고 나서야 울었다.
울다가 지쳐서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었다.
사실 내 슬픔의 크기는, 흘렸던 눈물의 양에 비해 턱도 없이 부족했다.
죄송해요. 할아버지, 제가 그렇게 펑펑 울었던 건 버팀목이 하나 사라진 제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서였어요.
아들 된 입장에서, 우는 아빠의 모습이 보기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요.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는 걸 좋아하셨다.
집에서 노인정으로, 발걸음이 더 닿는다면 더 먼 곳으로, 상황이 맞는다면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다녀오셨다.
할아버지는 여행을 가셨다. 더 자유로운 곳으로, 더 먼 곳으로.
할아버지는 정착하지 않을 민들레 홀씨가 되셨다. 넓은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가 되셨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새가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