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간단한 고찰

8살

by 평일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학기 초에 선생님은 작은 과제를 내주셨다.
각자 기를 작은 식물을 준비해 올 것. 아마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주고 싶으셨던 거 같다.
다행히 식물 기르는 것을 좋아하셨던 우리 어머니 덕분에 나는 금세 기를 식물을 정할 수 있었다. 작은 다육식물, 엄마는 다육식물이 기르기 쉽다고 하셨다.

다육식물에게 물을 줄 때는 이파리 한 개를 떼서 물을 얼마나 머금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물론 조금 더 순한 방법이야 있었겠지만, 8살이었던 나에겐 가장 직관적이고 확실하게 식물을 말라 죽이지 않을 수 있던 방법이었다.
그렇게 한 달에 두세 개씩 이파리가 쪼개져 나갔다.
어떤 이파리는 말라있어서 정말 식물을 살렸고, 어떤 이파리는 물을 가득 머금은 채로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

1학기 때 내 다육식물은, 이파리 2개가 떨어져 나갔다면 새로운 잎 4개를 피워냈다. 참 식물 다운 초록 빛깔이었고, 식물 다운 생명력이었다.
경이롭고, 그래서 내가 정말 사랑했었지.
2학기가 시작되고 그 다육식물은 점차 내 신경에서 멀어져 갔다.
더 이상 억울한 죽음도, 숭고한 희생도 없었다. 식물은 죽었고, 엄마는 내 등을 한 대 때리고선, 간단한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죽고 나면 별게 없구나.
묻히거나, 태워지거나. 살아있어야만 초록색이구나.
내 다육식물엔 더 이상 수식어를 붙일 수 없다. 아꼈던, 신경 썼던, 내가 키우던. 그런 수식어는 살아있을 때나 붙여줄 수 있는 것이다.
노력, 사랑, 혐오는 살아있는 것들 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사람이 죽던, 관계가 죽던 그냥 그런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초록색으로, 죽어버린 것은 검은색으로.
복잡한 세상 안에서, 참으로 간단한 이분법이다.

(첨부한 사진은 그 다육식물을 죽인 범인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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