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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Jul 04. 2024

24

연필

13.

  -나도 그래.

  -어, 너도 그래?

  -응응, 맛있는 걸 마지막에 먹어야 한 끼가 맛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니까. 처음에 먹어버리면, 남은 것들이 맛없게 느껴지잖아.

지원이와 나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작게는 생활패턴에서부터, 크게는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라던가, 주관이 확고한 점들이. 지원이와 하는 대화는 언제나 재밌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했었더라. 국어 선생님은 항상 수업을 시작하시기 전에 칠판을 두 번 두드리는 버릇이 있다던가, 어제 나온 급식은 유난히 맛있었다던가 하는 일상적인 것들이었는데, 지원이와 하는 일상적인 대화는, 드래곤이나 유니콘같이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재밌었다.

사실은 그냥 그렇지 못했다. 일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너무 지루했고, 간단한 말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들과 함께 하는 것은 너무 고된 일이었으니까. 그저 그런 새로운 사람도 원하지 않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감동을 받고 어떤 부분에서 식어버리는지를 알려주어야 하는 게, 알아가야 하는 게. 하다못해 약속을 잡을 때도 거기에서 보자는 말 대신 가게 이름을 일일이 말해주어야 하는 것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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