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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북스 Aug 02. 2023

63세 네덜란드 할아버지에게 연애 상담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 네덜란드 할아버지의 사랑 이야기


네덜란드에서부터 3,100km를 걸어온 마셀이라는 63세 할아버지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며 순례길을 걷게 되었다. 눈이 참 맑고 깊어 보이는 사람이라 호감이 갔다. 마셀과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근처 카페에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이야기를 이것저것 하다 보니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경험상, 나이가 지긋하도록 맑은 눈을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배울 점이 있다. 나는 순례길 초기부터 갖고 있던 내면의 화를 풀어내고 싶어 사랑을 주제로 꺼내었다.



“처음 누군가를 만나 사랑했을 때는 무척 설렜고 기분이 좋았어.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감정이 무뎌지는 건지,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가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아. 나이가 들면 사랑의 의미가 달라지는 걸까? 어떻게 생각해?”



질문의 의도를 바로 알아들었는지, 마셀의 대답이 우문현답이었다.



“굳이 누군가를 일부러 만날 필요 없어. 너의 감정과 느낌이 시키는 대로 해. 사랑할 때만큼은 눈으로, 머리로 하지 말고 가슴으로 해. 만약, 가슴이 떨리지 않는다면 아무도 안 만나면 되는 거야. 조급하게 누군가를 눈으로 찾지 말고 시간을 여유 있게 두고 찾아봐.”



그러고선 자신의 상황을 예로 들었다. 자신은 마흔 살이 넘어서야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가슴으로 품어 입양한 17세의 딸과 15세 아들이 있단다. 가족사진을 보여주곤 흐뭇하게 웃더니 마침 생각난 김에 아내에게 전화해야겠다며 통화를 했다. 진심으로 가족들을 사랑하는 게 표정에서 느껴져서 보기 좋았다.




마셀은 사랑을 마트에 비유했다.




“생각해봐. 어느 날 마트에 가는 거야. 거기에 너의 운명의 짝이 있다고 상상해봐. 그 사람의 조건, 배경, 학벌 등 아무것도 모르지. 단지 누군가의 눈빛이나 행동, 내 감정의 떨림만이 느껴질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내가 예언 하나 하자면, 너는 분명 그런 상대를 만날 거야. 넌 아직 충분히 어리고 시간은 많아.”



그는 내가 몇 마디 안 했음에도 어느 정도 짐작한다는 듯 확신에 차서 이야기했다. 말뿐인 조언이 아니라, 마셀은 63세가 되어서도 삶으로 자신의 이론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있었다. 그를 보고 있으니, 나이가 들어도 사랑을 진심으로 느끼고 솔직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셀도 자신의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하나는 3년이 지나면 정년퇴직을 해야 한단다. 산티아고에 도착할 때까지 은퇴 이후 제2의 삶에 대해 가닥을 잡고 싶은데 아직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산티아고에서 네덜란드로 돌아가는 항공권을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것인데, 방법이 어려워서 자신에게는 큰 도전이라고 했다. 내가 도움을 줄까 물으니 산티아고에 도착해서도 힘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할 테지만, 지금은 자신의

힘으로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것이 도움 될 때도 참 많다. 함께 걷고 있는 일행들과 서로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며 다양한 것을 배웠다. 관계가 깊어지면, 내가 살아온 답 외에도 삶에는 여러 가지 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 갔을까> 중에서



[에세이]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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