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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북스 Jul 27. 2023

500km를 치열하게 걷다가 문득 알게 된 것들

순례길은 보통 크게 3단계로 나눈다. 먼저 생장 피에 드 포르부터 부르고스Burgos까지 300km를 고통의 길, 부르고스부터 레온Leon까지의 200km를 명상의 길이라고 한다. 레온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나머지 300km는 깨달음의 길이다.





2014년의 첫 번째 순례는 고통의 길을 제외하고 부르고스부터 시작하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500km만 걸었다. 좋은 한국인 그룹을 만나 고생도 거의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로 운이 좋았냐면, 비를 한 방울도 맞지 않고 순례를 끝마칠 정도였다.



첫 번째 순례도 나름의 의미와 즐거움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꼭 고통의 길부터 시작해서 깨달음의 길까지 혼자 걷고 싶었다. 고생도 실컷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저번 순례는 봄이었으나 이번에는 여름 순례다.



여름의 순례는 모기와 초파리, 하루살이, 베드버그에 대한 두려움이 매일 따라다닌다. 대낮에는 걷는 도중에 머리 위로 하루살이와 초파리가 종일 달라붙으려 틈을 보고 덤벼든다. 가끔 길을 가다 쉬거나 잠시 짐을 정리하려고 할때도 모기떼가 달려든다. 때문에 숙소에서 자기 전, 매번 벌레 퇴치제를 뿌리고 베드버그가 있는지 확인한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 때마다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지 않아도 핸드폰알람을 진동으로 해놓고 베개 밑에 두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잔다. 부르고스 이후부터는 스페인 폭염 뿐만 아니라 많은것들이 순례자들을 방해한다. 분명 고통의 길을 지나, 명상의 길을 걷고 있는데 나에게는 이 구간이 정신적 고통의 길이었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나는 왜 혼자 걷겠다고 했을까?



마을 언덕에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순례의 절반이 지나갔다. 지금쯤 되니 내가 무엇을 얻고 싶어 이곳에 다시 온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순례길은 무언가를 얻으러 와서 결국은 비우고 가는 길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굳이 이방인이 된 이 길에서 나는 무엇을 비우고 또 발견하게 될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명상의 길을 완주하고 동네 펍에 앉아 200여 km에 달하는 명상의 길을 혼자 정리해보았다.





돌이켜보면 내 안의 욕심을 내려놓는 훈련이자 내면을 깊이 관찰하는 과정이었다.



부르고스부터 레온까지 모기와 베드버그로 고생했고 비를 자주 맞았으며 폭염을 겪었다. 거기다 병원비를 내러 은행에 들를 때마다 문전박대를 당했고 배낭도 두 번째로 배송이 잘못되었다. 처음에는 많이 억울했다.



그런데 레온에 도착한 뒤 그동안의 일을 정리하다 보니, 막상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았구나. 한국처럼 벌레가 없기를 바랐고, 비를 한 번도 안 맞길 바랐고, 덥지 않기를 바랐구나. 한국의 공공서비스 시스템을 스페인에서도 당연히 적용받길 바랐구나. 배송도 사고가 나지 않길 바랐구나.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사실 욕심임을 깨닫는 순간,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순례길에서 많은 것을 가져가고 싶은 것 또한 내 욕심이었다.



이 길 위에는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있을 뿐이다.





벌레를 싫어하는 나,

목이 마른 나,

사람을 좋아하는 나,

틀에 박힌 걸 싫어하는 나,

빨리 다음 목적지로 가고 싶어 하는 나.



이제 500km를 걸었고 내일부터 남은 300km인 깨달음의 길이 시작된다. 나는 처음 마음과 같이, 그저 나 자신을 관찰하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흘러가는 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 갔을까> 중에서



[에세이]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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