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타북스 Aug 08. 2023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병원 전전한 이유

순례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을 때 무리했던 탓에 걷기 시작하자마자 왼쪽 무릎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걸음 속도도 줄었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을 때는 식은땀을 흘리며 큰 통증이 느껴졌다.



상태를 지켜보던 일행 중 환갑이 넘으신 아버님께서 내게 도착지까지 스틱을 빌려주셨다. 다른 두 순례자가 뒤에서 내 걸음 속도에 보조를 맞춰주며 노래와 춤으로 응원해주었다.



피레네산맥에서 악천후를 만나 주저앉을 뻔한 이후 두 번째로 울 뻔한 순간이다. 힘든 게 문제가 아니라, 먼 타지에서 누군가에게 분에 넘치는 도움을 받다 보니 함께라는 생각이 커져서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의존하기보다 혼자 해결하려 애써 왔다.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계획과 달라지면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한걸음마다 도움이 절실했고 계획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통증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아득바득 걸어가는 것만 할 수 있던 내게 일행은 구원과도 같았다.



울기 직전에야 로그로뇨 대성당에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나는 짐을 풀자마자 스페인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가까운 거리에 큰 병원이 있어서 걸어갈 만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요일이라 외래진료를 받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도시인 로그로뇨를 아픈 다리로 걸어 다니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병원에서 설명해주기를, 현재 응급실밖에 연 곳이 없어 서 2km 떨어진 다른 병원까지 가야 한단다. 지나다니는 택시도 없어서 나는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걸었다.




신기하게도 스페인 병원은 엑스레이를 찍는 대신 의사가 여기저기 누르고 두드려보고 통증 여부를 물으며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 결과, 인대가 늘어난 건 아니었지만 왼쪽 무릎에 염증이 생겼다. 적어도 나흘 동안 절대 걷지 말라는 진단과 함께 왼쪽 무릎에 붕대를 감고 약을 처방받으니 128유로가 나왔다.



여행자 보험이 있었지만 당시 환율로 거의 15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보험 적용이 되는 항목인지조차 알 수 없었던지라 상황에 화가 나고 마음이 우울해졌다. 심지어 진료비를 지불하려 하니 병원 창구에서는 불가하고 은행에서만 수납이 가능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계좌가 있으니 계좌이체를 이용하겠지만, 외국인은 계좌 개설도 안 되고 무통장 입금도 없었다. 이걸 알아내는 과정에서 소통이 안 되어 숙소까지 2km를 아픈 다리로 두 번이나 오갔다.



울고 싶은 마음이 임계치를 넘어가면, 사람이 오히려 차분해 진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나는 병원을 왕복하며 동네 구멍가게에서 콜라 한 캔을 사서 벌컥벌컥 마셨다.



퇴사 전 휴가 때 다녀온 스위스 여행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호스텔에서 알게 된 스위스, 아일랜드인 친구에게 한국은 휴가가 너무 짧아서 아무리 길어도 일주일밖에 시간을 못 낸다고 투덜댄 적이 있다. 그랬더니 듣고 있던 스위스 친구가 “세라비C’est La Vie”라고 한마디를 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물으니, ‘이것이 인생이다’라고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냥 세라비라고 말하며 받아들이라는 조언이었다.



이게 진짜 세라비구나 생각했다. 화를 내 봤자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억울하지만 나는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성당에 가서 촛불 봉헌을 하고, 헌금도 많이 내고, 정말 미친 듯이 절실히 기도했다. 제발 내일도 걷고 싶으니 무릎을 낫게 해 달라고, 이 길을 완주하게 해 달라고 말 이다. 남들이 보기에도 꽤 절실했나 보다. 



이후 식사 자리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노래를 함께 부르고, 세계 곳곳에서 온 순례자들을 사귀며 시간을 즐겁게 보내다 보니 머리가 한결 맑아졌다. 고민 끝에 약 8kg의 배낭을 미리 다음 마을로 보내고 걸어보다 혹시 다리가 아프면 버스를 타기로 했다. 나는 알베르게 봉사자에게 병원에서 받은 서류를 보여주며 병원비 수납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



그는 이베르카하Ibercaja라는 특정 은행 지점에서 병원비를 내야 한다고 했다. 15일 이내에 납입하면 되니, 천천히 걸어가다 이베르카하가 보일 때 납입하기로 마음 편하게 결정했다.



그런데,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 갔을까> 중에서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 갔을까>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63세 네덜란드 할아버지에게 연애 상담을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