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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북스 Aug 17. 2023

남편 유골함을 짊어진 어머님을 순례길에서 만났다

5년 전, 철의 십자가는 첫 번째 순례에서 가장 의미가 있던 곳이다. 당시 나는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경쟁적인 삶과 안정적인 직장 등, “다 그렇게 사는 거야”라는 논리를 들으며 방황 중이었다. 내가 다녔던 대학 학부 특성상, 고시를 준비하는 경향이 흔했다. 때문에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사람을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환경과 자아 사이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상태에서 휴학을 내고 떠난 산티아고 순례는, 내 인생 첫 일탈이었다.





철의 십자가에 도착할 즈음 많은 사람들과 추억을 만들며 걷고 있었지만,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런데 천천히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찬 공기에 입김을 뿜어가며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인생에서 처음 느끼는 감정과 마주했다. 처음에는 인공물과 자연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조화에 감탄하다가, 다음으로 십자가 아래 놓여있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고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쓴 편지, 죽은 사람의 사진과 추모하는 글, 앞으로의 삶에 대한 각오가 적혀 있었다. 순례를 떠난 이유를 이곳에서 찾았음을 암시하듯 놓여있는 순례자의 상징인 조가비들은 분명 누군가의 배낭에 시작부터 꽉 매어져 있었을 거였다.



당시에 걸어가는 속도가 비슷해서 자주 마주치며 친해졌던 한국 어머님도 계셨다. 그분은 남편과 사별 후, 산티아고 순례를 오고 싶어 하셨던 남편의 유골함을 배낭에 짊어지고 걸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 했지만 두려움을 마주하며 용기 있게 걸었다. 폰세바돈에서 일찍 출발해 아무도 없을 시간에 철의 십자가에 남편의 재를 뿌리기 위해 해가 뜨지 않은 깜깜한 새벽에 홀로 길을 떠났다.



그분이 어떤 마음으로 걸었을까 싶어서, 갑자기 수많은 감정이 뒤섞이며 눈물이 계속 났다. 눈물은 안타까운 마음뿐 아니라, 자신이 믿고자 하는 방향으로 치열하게 고민하며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십자가 아래 놓인 순례자의 흔적을 발견한 순간은 내가 그동안 주변에서 들어왔던 삶과는 전혀 다른, 순례자들의 삶에 대한 진심과 감정이 내 안 깊숙이 들어오는 경험이었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있다고 느꼈다. 내가 휴학을 하면서까지 찾아왔던 순례길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난 오프로드Off-road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난 사람들이 모인 온로드On-road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 갔을까> 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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