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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북스 Aug 22. 2023

미국에서 온 순례자에게 오지랖을 부렸다


"걷지 않아도 괜찮아."


마을 광장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순례자 한 명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길래 자초지종을 물었다. 자신은 미국에서 온 순례자인데 다리가 아파 사리아에서 이곳까지 차를 타고 왔다고 한다.



그는 순례길의 룰을 어긴 것 같아 부끄러워서 더 이상 못 걷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저번에 만났던 순례자를 비롯해 대체로 미국인들이 남들과의 경쟁이나 룰에 대해 상당히 엄격하다. 컨디션이 나쁜 경우 배낭을 보내는 일은 순례길에서 흔하고, 차나 자전거를 타는 행위도 금지되지 않는다. 각자의 순례길에서 스스로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울고 있는 순례자와 눈을 마주치며, 중요한 건 남들이 아니라 ‘나’라고 말해주었다.



당신이 이렇게 울고 있다는 건, 생장피에 드 포르부터 700km를 충실히 걸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고 그게 가치가 없었느냐고 질문했다.



기준점을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오로지 자신에게 두고 집중하라고 전했다. 어제 무리해서 걸었다면, 다리가 아파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순례를 포기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나 또한, 피레네산맥을 넘고 무릎이 아파서 배낭을 일주일 정도 다음 마을로 보내며 걸었다고 덧붙였다.



처음 보는 순례자의 오지랖에 놀랐는지 그는 멍하니 나를 쳐다보다가 내 이름을 몇 번이나 묻고는 기억하겠다 고마워하며 다시 순례길로 걸어 나갔다. 나는 동네를 돌다가 츄러스 가게에 들러 핫초코와 츄러스를 먹으며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한 건지 되짚어 보았다. 아마 그 순례자에게서 나의 예전 모습이 보여서 그랬던 것 같다. 



사실은 나 자신에게 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 갔을까> 중에서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 갔을까> 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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