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물에 잠길까? 물은 흘러가기 마련인데"

기프실(2018)

by etcc



문창현 감독의 <기프실>은 제목만으로는 짐작되지 않는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기프실'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시골 마을 이름이다. 마을 일대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영주댐이 건설되면서 2016년 수몰됐다.



기프실을 흐르는 내성천 (출처: KMDb)




<기프실>은 마을이 사라지기 전, 감독이 할머니 댁이 있는 기프실에 머물며 보고 들은 것들을 고스란히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 땅에선 80살 넘은 할아버지를 선배로 둔 평은초 아이들이 물장난을 치고, 논밭을 뒤엎고 만든 도로 바로 옆에서 할머니가 작물을 심고, 주인을 알아보는 감나무가 개미, 고양이, 개구리, 무당새,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과 섞여 지내며 감독은 촬영 중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자신의 기억과 마음까지 되짚어낸다.




'기프실'은 아홉 개의 골짜기 중에서도 까마득히 깊은(=깊은) 마을(=실)에 있어 지어진 이름이란다. 감독은 수몰 이후 까맣게 잊혀버리고 말 공간과 시간을 카메라로 남기기 위해 2012년 처음 기프실을 찾았다고 한다. 비워놓았던 할머니 댁에 들어와 살고 계신 큰아버지를 찍던 카메라는 개인의 가족사를 말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기프실 사람들'로 초점을 넓힌다.




특히 감독은 10년째 기프실에서 살아온 김노미 할머니와 오랜 시간을 들여 유대를 쌓으며 기프실에서의 일상을 기록했다. 아들을 낳기를 바라며 지어진 이름 '노미'부터 한평생 가족을 위해 살다 국가의 명령에 삶의 터전으로부터 밀려나는 할머니의 삶에서 감독은 주위의 관심에서 소외되고 사라지는 기프실을 발견한다. 이렇듯 <기프실>은 여성이 기록한 여성의 삶을 통해 재개발 지역의 투쟁을 다뤘다는 점에서 유사한 주제의 다큐멘터리와 구분된다.



김노미 할머니와 친구 할마이들 (출처: KMDb)




개인의 삶과 공간의 운명을 일직선상에 놓는 방식은 영화가 자연을 보는 시선과도 상통한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자주 보던 거울에 날아들어온 무당새를 할머니라고 생각하거나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목을 매 돌아가신 왕머리할매네 감나무가 이듬해부턴 그 탐스럽던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이야기에서다. 전통 설화처럼 느껴지는 이 일화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기프실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동시에 영화는 자연을 단순한 자원으로 보는 관점을 대비시킨다. 국토 개발과 경제 성장의 논리, 삶의 터전을 보상금으로 치환시키는 돈의 논리, 즐길거리에 불과한 관광의 논리다. 물아일체의 공간에서 자라온 아이는 동원되는 공간에 의문을 던진다. "(마을이/학교가) 어떻게 물에 잠길까? 물은 흘러가기 마련인데"




1922년 개교한 평은초등학교는 수몰을 앞두고 헐렸다. (출처: KMDb)




<기프실>은 다만 소멸되는 시공간을 박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화 초반 할머니의 뒤를 쫓으며 신음 흘리던 감독은 기프실을 기억하는 주체들과의 만남을 통해 마침내 그를 어루만지며 떠나보낸다. 조용히 달라지는 풍경을 응시하며 시간의 흐름을 발견하는 것은 영화를 감상하는 또 다른 재미다.





<기프실>은 2018년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됐으나 아직 극장 개봉은 하지 못한 작품이다. 현재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만날 수 있다.






※윗글은 뉴스레터에 실리기 전의 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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