례(2018)
5월 1일이다. 구직자에게 '근로자의 날'은 어쩐지 남의 일 같지만, 최근 내 일처럼 고민한 적이 있었다. 영화제 자원활동을 하면서 근로자의 날과 관련된 영화의 인터뷰 기사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달력엔 '근로자의 날'이라고 쓰여 있는데, 다큐멘터리 시놉시스나 감독은 '노동절'이라 칭했다. 나는 뭐라고 써야 할까 싶어 조금 찾아봤다. 노동과 근로의 의미적인 차이는 쓰이는 한자만으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勞 일할 노(로) 動 움직일 동 / 勤 부지런할 근 勞 일할 로(노)
노동이 사전적으로 중립적인 단어라면 근로는 '부지런히'라는 가치가 내포된 단어다. 노동절/근로자의 날 명칭과 관련해서는 원래 노동절이라는 이름으로 기념됐다가 박정희 정권인 1963년부터 근로자의 날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앞서 '노동'이 중립적이라고 했지만 그건 사전적인 의미에서고, 반공이 국시이던 시절 노동은 사회주의의 언어로 인식됐고, 이를 대체한 말이 '근로'였다고.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계는 '노동절'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노동자의 권리를 말하는 영화를 다루는 나도 '노동절'이라 적었다.
오늘로 영화가 다루는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2주기가 됐지만, 생존자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여전하다고 한다. 산업재해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이 낮아, 제대로 산재처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자비로 치료하거나 단기적 약물 처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얼마 전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은 해당 사고뿐만 아니라 산업재해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 관련 피해자들의 구술집을 냈다. 산추련의 이은주 활동가는 "삼성크레인 사고는 평등하지 못한 일터에서 발생하는 제도적 문제의 한 단면이라는 점에서 증언이 곧 치료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바싹 다가온 마감 기한을 맞추기 위해 여러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었고, 크레인과 크레인이 충돌해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바로 눈앞에서 동료와 형제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이 있다. 이 책은 이들이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활동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저마다의 역사를 가지고 살아오다가, 저마다의 이유로 조선소 노동자가 된 사람들. 조선소 노동, 하청 노동의 실체는 물론이고,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이들의 고통과 막막함, 산재가 처리되는 과정의 이야기까지, 이 책에는 조선소 노동자 아홉 명이 증언하는 자기 삶과, 노동과,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출처: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홈페이지)
<례>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게도, 영화를 사람보다 차순위에 둔 채 최선의 결과를 만들려 노력한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당사자인 생존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도록 전력을 기울였다.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권순현 감독은 사려 깊고 겸허한 사람이었다. <례>에서 좋았던 부분을 언급했을 때, 그는 공을 모두 영화에 도움을 줬던 이들에게 돌렸다. 만드는 이의 윤리를 운운했던 경솔한 나에게 그는 더 넓은 시각을 보여줬다. 기사를 썼던 당시 세 개 작품을 다뤄야 했던 터라 인터뷰 내용 중 많은 부분이 빠져 아쉬웠다. 노동절을 맞아 인터뷰 전문을 공개(?)한다.
� 인터뷰를 준비하려고 영화를 네다섯 번 봤는데 (권순현 감독: 저도 그 정도는 안 봤는데. 하하) 텍스트가 풍부한 영화더라고요. 다시 볼 때마다 안 보이던 것들을 발견하게 됐어요.
그렇게 봐주셨다면 감사합니다.
� “노동자가 아니라 노가다꾼”이라며 ‘노동자’라는 단어에 박탈감을 느끼는 사고 피해자를 보면서 씁쓸했어요. 2018년에 완성된 영화니 다시 또 1년이 흘러가고 있는데 상황은 좀 나아졌나요?
산재 트라우마라는 게 말도 무시무시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굉장히 열악해서 그분들이 일하다 다친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기자회견에 나왔던 분들의 경우에는 지금도 상황이 썩 좋지 않아요. 법적인 문제도 걸려 있어서 그 부분은 제가 상세하게 전해드릴 수 없을 것 같고요.
‘마창 거제 산재 추방 운동 연합’이라는 단체에서 트라우마를 겪고 계신 생존자분들을 전담하고 계세요. 거기에서 트라우마를 갖고 계신 생존 노동자분들을 위해서 구술집을 4월에 내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걸 보시면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얘기들이 담겨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례>가 속한 섹션 이름이 ‘경청의 온기’잖아요. 사라져 가는 공간을 다룬 <골목의 이야기> 이후 노동자들에 귀를 기울이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례> 전에 <피와 재>에서 노동 문제를 다뤘었는데요. <골목의 이야기> 이후 <피와 재>로 넘어갈 때는 제 나이가 어린 편이었고,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인 학생이었어요. 그러다 저도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고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어요. 그런 제 개인적인 상황과 맞물려서 노동문제로 한 번 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특히나 이번 영화 같은 경우에 비정규직에 관한 이야기로 포커스를 잡았던 게, 결국엔 저도 비정규직 노동을 하고 거기서 느낀 어떤 박탈감 같은 것들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번 영화 찍으면서 일에 대해서, 노동에 대해서, 제가 앞으로 해야 될 노동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아요.
� 처음엔 경청의 대상인 노동자들을 위해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셨을 텐데 작업하면서 본인한테도 어떤 의미를 갖게 된 셈이네요?
그렇죠. 저한테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단순하게 조선업이 어렵다는 얘기가 나올 때였고, 거제에 내려가서 원래는 좀 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두 달쯤 있을 때 크레인 사고가 났고 어쩌다 보니 거기에 계속 끌려다니게 된 거죠. 결국 참사에 대한 이야기로 바뀔 수밖에 없었던 게 더 이상 그거 외에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게 생각이 잘 안 났어요. 제 초점이 거제라는 지역보다는 그 지역 내에 있는 하청 노동자들, 그리고 하청 노동자들이 겪게 된 크레인 사고로 옮겨가게 된 것 같아요.
� '노동절에 발생한 크레인 사고'라는 사건이 너무 극적이라 다큐멘터리 속 관련 장면은 재연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떻게 카메라에 담게 됐나요?
2016년 12월부터 사전조사는 했었고 본격적으로 내려가서 찍은 건 2017년 3월부터입니다. 사고가 난 날은 제가 촬영을 시작한 지 두 달밖에 안되었을 때니까 다큐멘터리 만드는 사람으로서 라포를 쌓겠다는 마음으로 노동절 행사에 같이 갔던 거예요. 안일한 마음으로 내려갔다가 그런 일이 터져가지고 멘붕이 와서 더 잘 찍을 수 있었는데 놓친 것들이 되게 많아요. 저도 아쉽죠. 사실은 그날뿐만 아니라 크레인 사고가 난 이후 제가 촬영을 많이 쉬었거든요. 도저히 찍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이 영화의 구성은 크레인 사고로 잡을 수밖에 없었지만, 오히려 찍은 밀도에 있어서는 굉장히 떨어지는 게 많아요.
� 그러면 2017년 5월 1일 노동자들이 사무실에 모여서 영화를 보는 부분도 실제 상황을 찍으신 거예요?
네. 노동절이니까 다음 행사를 준비하기 전에 시간이 남아서 그러면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자 해서 다 같이 봤던 거고, 그러다가 그렇게 된 거고. 그러니까 정신이 좀 없었죠.
� 영화에 나오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따로 인터뷰를 진행한 게 아니라 기자회견 장면에서 채록한 거라고요?
크레인 사고에 관한 영화를 잘 만들려면 그분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저같이 언저리에서 맴도는 기록만 하는 사람도 버거운데, 그 사고에서 실제로 그 광경을 보고, 생존하신 분들한테 그런 걸 요구한다는 건 제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고 생각해서 비겁하게 피한 면도 있는 것 같고요. ‘마창 거제 산추연’ 단체에 트라우마 쪽을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주관하는 행사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을 때 그러면 추가적인 인터뷰를 하지 않고 이걸로 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영화를 편집했죠.
� 영화를 만들면서 당사자인 노동자의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과 연출자로서의 바람이 상충하는 지점이 있었던 거네요?
네 있었죠. 사실 저는 원래 영화적으로 해보고 싶은 게 많았어요. 거제도에 내려가서 1년 동안 살면서 지원을 받는 게 저같이 경력이 미천한 초기 감독들한테 흔치 않은 기회라서 영화적으로 욕심도 많았었는데요. 제가 크레인 사고를 옆에서 보면서 이야기꾼보다 이야기가 더 중요한 이야기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거밖에 있는 영화구나. 그래서 영화적으로 뭔가 하기보다는, 최대한 구성도 처음 했던 구성보다는 훨씬 평이하게 연대기 순으로, 최대한 내가 봤던 것들 내가 찍은 클립들을 나열하는 형태로 영화를 완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 이 형태로 가는 것이 제가 영화적인 욕심으로 연출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영화에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이게 떳떳할 수 있는, 속된 말로 덜 쪽팔린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 그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윤리적인 면에서 떳떳하다는 건가요?
윤리는 만드시는 분들마다 너무 다양하잖아요. 그래서 그에 대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없는 것 같고요. 그냥 제 선에서 제가 벅차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어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거죠. 물론 트라우마를 갖고 계신 분들을 촬영하면서도 오히려 회복할 수 있게 해 주시는 훌륭한 감독님들이 세상에 많이 계세요. 그건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따라다니면서 팔로우한 영상들을 썼던 것 같습니다.
� 저는 영화를 위해 직접 인터뷰를 하신 줄 알고 왜 여러 가지 오브제 화면에 목소리만 보이스오버 하셨는지 여쭤보려 했는데, 이러한 연출은 그럼 다른 선택을 한 뒤에 고민을 하면서 완성해나간 결과물로 보면 될까요?
일단은 몸통만 있으니까 토르소라고 할게요. 영화 초반에 보면 아시겠지만, 조선하청지회 분들이 바로 옆의 반올림 집회에 장식된 걸 보고 우리도 이런 걸 하자 해서 토르소를 벤치마킹하신 거예요. 그걸 찍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저는 그게 제 아이디어가 아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후에 생존자 기자회견을 넣을 때 그분들이 얼굴이 노출되거나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굉장히 꺼려하세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국엔 없는 화면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이미지를 가져와서 쓰는 방법으로 조선하청지회 분들이 만드신 토르소를 제가 한 번 더 쓰게 됐어요.
� 저는 토르소가 배치된 화면 미장센이 연극 무대 같다는 생각도 했거든요. 작업복을 입은 토르소가 강한 빛을 등지고 있는 모습이나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 같은 것들이요. 이 부분은 어떻게 연출하신 건가요?
크레딧을 보시면 박철우 감독, 김지완 감독, 김보경 감독이 나와요. 세 분은 극영화도 작업하셔서 다큐만 찍어온 저보다 이미지에 훨씬 더 능하세요. 그래서 제가 그분들한테 부탁했죠. 그때 그분들한테 드렸던 얘기는 “토르소를 놓고 여기저기서 찍어보고 싶다”였는데 그분들이 로케이션도 알아봐 주시고, 소품도 구해와 주셨어요. 그래서 그 부분은 완전히 그분들의 공이죠.
� <례>도 그렇고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흔적>, <부끄럽지 않나요>)들을 봤는데 사운드가 사용된 부분이 인상적이더라고요. 크레딧에 스태프 이름은 없던데 사운드 편집은 직접 하시나요?
이번 영화에 특히 사운드에 집중하긴 했었어요. 원래는 이미지에 집중하는 편이었는데 이 영화를 편집할 때부터 인물의 감정들 특히 토킹 헤드가 안 나오는 인터뷰이들의 감정을 이미지로 표현하려면 단순하게 화면이 예쁜 걸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사운드로 최대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이명이 들린다는 발언을 할 때 일부러 이상한 노이즈를 넣는다든지 그런 부분에 시간을 많이 썼어요.
� 또 빠진 부분을 채워 가다 보니까 그런 시도를 하신 거네요?
네. 사실 전 말하는 얼굴이 제일 힘이 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영화는 아무래도 기자회견 때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았고, 당시 사운드도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렇게 좋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채우려고 하다 보니까 토르소도 나왔고 사운드를 쓰는 방식도 나왔던 것 같아요.
� 영화의 결말부에서 관객들의 감정을 뜨겁게 고조시키면서 현실에서의 행동을 촉구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진 않으셨더라고요. 담담하게 연출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사실 저도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부분이 그거예요. 저는 이 영화가 되게 우울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 영화에서 담지 못한 것들이 있는 게 후에 집회를 주로 하셨던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분들은 주로 대우 조선에 계신 분들이 많아요. 크레인 사건을 떠나서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활동은 정말 희망적인 것들이 많은데, 제가 이 영화를 삼성중공업으로 한정 짓다 보니까 그 부분들이 잘 표현되지 않은 것 같아요.
또 영화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건 제가 연출자로서 분노라는 걸 잘 못 느꼈던 것 같아요. 처음엔 당연히 분노가 컸는데 크레인이 무너지고 나서 지지부진하게 관련자들 처벌은 없었고, 피해자들은 계속 고통받고, 함께 운동하시는 분들도 너무 힘들어하시고 이런 모습만 보다 보니까 저도 이 영화를 편집할 때쯤에는 너무 슬프고 힘든 거예요. 그렇다면 제가 억지로 뭔가 행동을 촉구하는 결말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요즘에는 이기는 투쟁보다 오래 하는 투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활동가들, 당사자들의 어떤 사건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기에 분노보다는 지속되는 삶의 힘겨움에 관한 영화로 감정을 전하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