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연 무브먼트 ‘플라스틱 버드’(2021)
사그라드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껴도 되는 걸까
최지연 무브먼트의 ‘플라스틱 버드’는 명확한 주제 의식을 가진 작품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자연을 파괴했고, 그 결과는 돌고 돌아 다시 인간을 향하리라는 것. ‘플라스틱 버드’는 작품의 제목이자 시작점이다.
미국의 생태운동가 겸 다큐멘터리스트 크리스 조던은 배에 플라스틱이 가득 차 죽어가는 어린 알바트로스 새의 사체를 포착했다. 알바트로스 새의 죽음의 원인은 분명하다. 바다 위를 활공하던 어미 새가 먹이인 줄 알고 물어다 먹인 플라스틱이 독이 됐다. 몸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무게에 날지 못하고 죽어가면서도 새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자연의 무해함을 신뢰하는 동물의 습성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이 한 장의 사진에서 춤이 비롯됐다.
암전 상태의 무대는 오르골 소리와 함께 밝아진다. 무대 위로 무용수 한 명이 긴 줄 같은 막대기를 쥐고 등장한다. 3m 길이의 길고 좁은 알바트로스의 날개를 형상화한 것 같은데 쉭쉭 소리를 낼 정도로 위협적으로 휘두른다. 그 뒤엔 날아오르지 못하는 새가 계속해서 날갯짓하지만, 한데 뭉친 사람들이 그를 무겁게 짓누른다. ‘무리’와 그 무리에서 떨어진 ‘일부’는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다. 그건 죽어가는 새의 낙오로 비치기도, 자연의 거대한 법칙을 가볍게 무시하는 인간의 오만처럼 비치기도 한다.
‘플라스틱 버드’의 안무가 최지연은 이화여대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한국 전통춤을 토대로 하는 무용단 창무회에서 예술감독을 지냈다. 그는 영화와 연극을 넘나드는 새로운 문법으로 관객과 소통하고자 최지연 무브먼트를 창단했다. ‘플라스틱 버드’에는 이러한 그의 공력이 집약적으로 반영됐다. 한국 전통춤의 요소는 작품 전반에 무용수들의 절제된 동작, 오색 소품에 녹아들어 있다. 영화적인 문법은 무대 뒤쪽으로 투사되는 ‘플라스틱 새’ 영상 외에도 음악의 사용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명상음악, 전자음악, 전통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분위기를 전환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또한 작품의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해, 무용보다 비언어극에 가깝게 느껴졌다.
중반부에 이르러 무대 위를 가로지르던 무용수들은 손에 쥐고 있던 형형색색의 조각을 꺼내, 객석 1열과 가까운 무대 앞에 흩뿌린다. 곧 이들은 자신의 몸을 신경질적으로 긁어댄다. 편의에 의해 사용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결국 인간 스스로에게도 해를 입힌 것이다.
작품은 관객에게 윽박지르지도, 겁을 주지도 않는다. 대신, 아름다움은 괴로워하며 죽어가는 새의 모습을 비롯해 등장보다 퇴장을 위한 몸짓에서 강하게 느껴졌다. 사그라드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껴도 되는 걸까. 관객이 그 불경스러움에 고민하는 순간, 이 연약하고도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할 권리가 인간에겐 없다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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