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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cc May 28. 2021

악기가 마법사라면

필름콘서트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2019)

필름콘서트가 클래식 음악 공연의 외연을 넓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심장 고동을 울리는 저음역의 첼로는 위압적인 어둠의 마법사, 따뜻한 음색의 플루트는 사려 깊은 할머니 마법사, 미묘하게 신경을 자극하는 높은 소리의 바이올린은 교묘한 술수에 능한 악의 마법사. 해리포터가 악기에 대고 마법이라도 부린 걸까. 필름콘서트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각 악기는 저마다 특정한 캐릭터를 형상화했다. 악기의 음색과 특징을 영화의 서사와 절묘하게 결합한 존 윌리엄스(1932~)의 음악 덕이다. 


필름콘서트는 무대 위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상영하는 동안, 오케스트라가 영화의 스코어를 실연하는 형식의 공연이다. 필름콘서트 ‘해리포터’ 시리즈는 원작의 전 세계적인 흥행에 걸맞게, 각국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2019년 11월에만 미국 달라스·태국 땀본·독일 뮌헨 등의 콘서트홀에 공연이 올랐다. 한국에서는 코리아쿱 오케스트라가 70인조 편성으로 연주했다. 여러 차례 필름콘서트를 이끈 지휘자 시흥 영이 관객을 호그와트로 초대했다. 연주 시작 전, 지휘자는 그리핀도르·슬리데린 등 호그와트 기숙사를 차례로 호명하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했다. 


지휘자의 보면대 옆에는 영상이 재생 중인 전자기기가 놓였다. 영화 영상 위로 연주 시작점과 박자를 표시하는 기호가 흘러갔다. 영화 ‘해리포터’의 대표곡 ‘헤드위그의 테마’를 여는 신비로운 첼레스타 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정말 들려만 왔다. 스크린 상영을 위해 무대 조명을 어둡게 해 둔 탓에, 오케스트라의 연주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객의 눈은 스크린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관객이 공연장을 직접 찾는 이유는 귀에 익숙한 영화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고 싶어서’ 일 것,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필름콘서트 ‘해리포터’ 시리즈는 2019년 세종문화회관의 시즌 공연으로 기획됐다. 지난 6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첫선을 보였고,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극장 관계자는 “몇 해 전부터 국내외 매니지먼트사로부터 필름콘서트를 제안받았다. ‘해리포터’는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영화 음악의 완성도가 워낙 높고, 원작 영화가 젊은 층의 독보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 선택했다”라고 공연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확실히 공연 시작 전부터 로비는 들뜬 관객들로 붐볐다. 로비는 ‘해리포터’의 테마파크처럼 단장됐다. 마법책·지팡이·양초 등 영화 속 소품들로 포토존을 꾸몄고, 기둥에는 호그와트 기숙사의 휘장을 둘렀다. 새로 유입된 관객에 맞춰 여타 클래식 음악 공연과는 다른 분위기를 낸 것이다. 가족 단위 관객이 주를 이뤘고, 소설 ‘해리포터’의 출간을 고대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을 20·30대 젊은 관객도 눈에 띄었다. 


필름콘서트가 클래식 음악 공연의 외연을 넓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료 티켓 예매율만으로 집계되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 통계에 따르면, 필름콘서트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은 2019년 11월 18일 기준, 1년간 가장 높은 예매율을 기록한 공연 2위에 올랐다. 클래식 음악 공연에서는 이례적인 현상도 나타났다. 일반적인 클래식 음악 공연이 1층 VIP석부터 판매가 이뤄지는 것에 비해, 필름콘서트 ‘해리포터’ 시리즈의 경우 3층의 B석부터 아래층으로 내려오며 매진되는 모습을 보인 것. 


세종문화회관은 필름콘서트 ‘해리포터’ 시리즈를 이어간다. 필름콘서트가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도록 연출적 보완을  더한다면, 색다른 클래식 음악 공연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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