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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cc May 28. 2021

느리고 주변적인 삶의 면면

연극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

그러니 궁금해진다, 당신의 이야기가



유튜브 영상도 10분이 넘으면 외면당하는 짧은 콘텐츠의 시대. 160분짜리 연극이 용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극작가로 잘 알려진 장우재(1971~)가 연출한 연극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 얘기다. 


연극은 아모스 오즈(1939~2018)의 단편 소설집 ‘친구 사이’를 원작으로 한다. 소설은 이스라엘의 공동체 생활 집단인 키부츠에서 공동소유·공동노동을 원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연출가 장우재는 단편 소설집을 극화하며 여덟 개의 단편을 막별로 구성하는 대신, 무대 위에 한꺼번에 펼쳐놓았다. 나름의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 각각의 서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무대는 이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무대는 회전하며 정중앙에 위치하는 배우들을 바꾼다. 관객의 이목은 중심을 향하지만, 무대의 어느 한구석을  바라봐도 극은 진행 중이다. 오히려 대사 없이 일상적인 행동을 연기하는 배우를 볼 때 그 인물의 상황이 더 와닿기도 한다. 요컨대 ‘빠르고,  간단히, 요점만’에 익숙한 이들에게 장우재는 끈덕지게 바라보기를 권유하는 것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키부츠를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리는 청년 ‘요탐’이 있다. 마을 투표에서 이웃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다. 요탐이 표를 구하는 행위는 월요일부터 6일간 진행되는 연극의 시간축에서 중심이 된다. “누구세요?” 경계하듯 묻는 이웃의  목소리에 그는 더듬거리며 말한다. 이번 주 토요일에 있을 마을 총회에서 자신에게 찬성표를 던져 달라고. 


상황은 이렇다. 요탐의 외삼촌은 요탐의 대학 진학을 지원하겠다며 그를 이스라엘 밖, 이탈리아로 초청했다. 그러나 요탐의 유학이 키부츠의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그의 진로가, 인생의 방향이 투표에 부쳐진 것이다. 요탐은 과반수 찬성표를 얻어야만 키부츠 밖으로 나갈 수 있다. 2대2에서 2대3, 다시 5대5… 요탐이 이웃을 찾아가 만날 때마다 조금씩 바뀌는 투표 결과에 극의 마지막, 요탐의 향방을 점쳐보게 된다.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제 편을 늘려가는 요탐을 보니, 문득 어린 시절 부르며 놀던 노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상대방을 향해 당당히 진격하다, 다시 뒤로 물러서기. 이를 반복하며 같은 편을 늘려가는 것이 비슷하다. 다만 우리의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서 가위바위보가 아닌, 설득과 대화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집에 찾아와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는 요탐에게 키부츠 사람들은 때로는 동의의, 때로는 반대의 근거가 되는 자기 사정을 얘기한다. 서로에게 공동체의 일원으로만 존재하던 그들이 만남을 거듭하며 개개의 삶을 너끈히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규칙과 관습, 집단적 분위기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의 중심을 잡아간다. 기자는 연극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어서  모두 그의 집으로 가보세요’를 “이해를 구하다 결국 상대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로 읽었지만, 관객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가 도출될 수 있는 작품이다. 극 중 워낙 다양한 상황에 처한 각기 다른 인물들이 자기 생각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이 연극을 관람하는 일은 곧 자신의 가치관을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그러니 궁금해진다, 당신의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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