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문장을 읽고
나는 매일 화내는 엄마다. 어제저녁에도 오늘 아침에도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 놈의 화는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몇 번은 참았다고 변명을 해보지만 결국 소리를 질렀으니 할 말이 없다. 육아서를 열심히 읽으면서 노력해 보지만 조금 나아진 듯하다가도 다시 소리 지르는 엄마가 되어서 허무하고 답답했다.
둘째 꿍이는 밤에 침대에 누워서 언니랑 놀다가 자는 것을 좋아한다. 9시 30분쯤에 자러 들어가지만 10시, 혹은 11시가 다 될 때까지 아이들 방에서 까르르하는 웃음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늦게 잠들다 보니 아이는 아침에 깨울 때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눈을 떴다가 다시 잠들고 몸을 뒤척였다가 다시 잠든다. 침대에서 일어나 식탁에 오기까지 30분이 넘게 걸렸다. 진짜 문제는 아침 시간이 아니다. 오후 5시쯤부터 꿍이는 졸리기 시작한다. 유치원 버스에서 내려서 놀이터에서 조금 놀거나 간식을 먹고 집에 들어와서 씻으면 6시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꾸벅꾸벅하던 꿍이는 결국 잠을 이겨내지 못하고 잠들어 버리기 일쑤다. 저녁밥을 먹으라고 깨우면, 졸린데 엄마가 잠을 깨웠다고 짜증이 보통이 아니다.
며칠 전에는 오후 5시부터 잠을 자길래 조금 이따 깨우지 않고 그대로 푹 자게 했다. 아이가 힘든데 깨워서 밥을 먹이느니 한 번쯤은 밥을 안 먹고 자게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꿍이는 다음날 7시가 되어서 일어났다. 엄마 닮아서 잠이 많구나, 배고프겠다고 생각하고 평소처럼 아침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잠에서 깬 꿍이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엉엉 울더니 화장실에 가서 설사를 하고 또 배가 아프다고 했다. 배를 살살 만져주니 다시 잠이 들었다. 중간중간 잠이 깼을 때 밥을 먹으라고 한 숟가락 떠주면 겨우 삼키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잠이 든 꿍이는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이제는 괜찮아졌다며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저녁밥을 굶고 자서인지, 그날 오후에 먹었던 간식이 문제였던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괜찮아져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또 어제, 저녁밥을 먹을 시간이 되자 꿍이가 졸리다고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밥 먹고 자야지.
싫어, 졸리단 말이야!
그럼 침대에 가서 잘래?
또 배 아프라는 거야? 엄마 미워!
아이의 짜증에 결국 나도 화가 치솟았다. 그동안 쌓아뒀던 속마음을 우다다다 아이에게 쏘아대기 시작했다.
대체 어쩌라는 거야. 그러니까 밤에 일찍 자라고 했잖아. 자기 싫다고 계속 노니까 지금 졸린 거잖아. 그래놓고 엄마한테 짜증내면 어떡해!
아이가 졸려서 밥을 못 먹고 꾸벅거리는 게 안쓰러운 것보다 자꾸 짜증 내고 엄마에게 화풀이하는 게 사실 더 속상했던 게 내 속마음이었을까. 짜증을 참지 못하고 용이 불을 내뿜듯 아이에게 화를 뿜어냈다. 아, 일곱 살 아이에게 뭐 하는 짓인지. 화를 낼수록 웬일인지 계속 짜증이 치솟았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다가 문득 이성이 돌아왔다. 이제 그만, 그만, 그만! 아직 마음속은 부글거렸지만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보면서 말을 삼켰다.
꿍이야, 엄마가 소리 질러서 미안해. 많이 무서웠지?
엄마는 맨날 화내잖아. 나 안 괜찮아.
입술을 쭉 내밀고 뾰루퉁하게 말하면서도 꿍이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진 게 보였다. 화내는 엄마에 대한 서운함도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 저녁밥을 먹고 다시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다. 아이를 품에 안고 책을 읽어주고 9시가 되어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오늘은 15분 이따가 바로 잘 거야. 더 놀지 않을 거야.
다음날 새벽, 노트북을 열었다. 얼마 전부터 '화 기록 일지'를 쓰고 있다. 뭐 거의 매일이기는 하지만, 아이에게 화를 낸 날이면, 다음 날 아침에 기록을 한다. 화가 나는 건 내가 기대하는 것이 있고 그것이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정말로 원하는 것을 찾으면 나를 알아차리고 감정도 조절할 수 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어제 화낼 때 내 감정이 어땠는지, 왜 화가 났는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24년 6월 24일 월요일. 오늘 내가 화를 낸 이유는.
내 감정과 기대했던 것을 적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아이가 힘들었던 걸 알겠다. 졸려서 힘들고 피곤한데 엄마의 따발총 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무서워했을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엄마를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을 의젓한 마음도.
아이들에게 매일 화내는 엄마지만, 글을 쓰면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 중이다. 다정하고 따뜻한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오늘도 화 기록 일지를 쓴다. 아직은 첫걸음에 불과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포근하고 따스한 엄마가 되어 갈 거라고 믿으면서.
쓰는 일은 곧 사랑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일상에서 시작해야 한다.
잘 사는 사람이 잘 쓸 수 있다.
-김종원,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중에서.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