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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l 05. 2024

나만의 책장을 만든다는 것

모지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문장을 읽고

  어릴 적 꿈은 작가였다. 일기를 잘 썼다고 칭찬받은 후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글쓰기 실력은 평범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여행 작가가 부러워졌다. 일상을 벗어나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다니는 여행기를 읽으면 설레고 신이 났다. 새로운 곳에서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보는 눈이 넓어지니, 이거야말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물론 지금은 여행 작가를 꿈꾸지 않는다. 여행을 계획하고 정보를 찾는 일이 설레기보다는 해치워야 할 또 다른 일거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면서 마음이 둥실둥실 떠오르고 벌써 공항에 간 듯 설렐 때가 있었는데, 세월이 야속해진다.) 저질 체력도 문제다. 조금 걸으면 쉬어야 하니 여행을 제대로 할 자신이 없다. 한 시간 여행을 하고 서너 시간 카페에 앉아 쉬어가는 여행이라면 모를까, 지금 나에게는 여행을 즐길 체력과 준비할 능력이 없다. (카페 탐방기를 써보는 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은 에세이 작가가 되고 싶다.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글로 옮겨 담으면, 책이 내 시간들을 오롯이 감싸줄 것 같다. 글을 쓸수록 생각이 깊어지고 나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 멋진 일이다.


  나만의 책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읽고 싶은 책들만 꽂아 놓은 나만의 책장. 그중 한 칸에는 내가 쓴 책들을 꽂아두는 거다. 마흔 살부터 쓰기 시작한 내 책들이 꽂혀 있고, 그것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 한 구석이 간질간질해진다. 정말로 내가 어렸을 때 꿈꾸던 작가가 됐다고? 왠지 우쭐하고 나 스스로가 멋져 보일 것 같다.




  글의 힘은 놀랍다. 그래서 다들 글을 쓰라고 하나 보다. 글쓰기는 어렵고 부담되는 일이다. 커서가 깜박이는 하얀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초조해지기도 한다. 막상 쓰다 보면 딱딱하고 창백해 보였던 화면이 안온하고 포근한 '대나무 숲'으로 바뀐다. 무슨 이야기든 해도 괜찮을 것 같고, 어떤 이야기든 눈을 반짝이며 경청해 주는 네모난 대나무 숲. 그래서 마음이 답답해지거나 울적한 일이 생기면 혼자 노트북 앞에 앉게 된다.

  글이 너무 써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손을 놓아버리면 한없이 글을 쓰지 않게 될까 봐 동기 작가님들과 공동매거진을 시작했다. 같은 문장으로 서로가 하고 싶은 글들을 풀어놓는다. 일주일에 한 편씩 써야 한다는 사실이 은근히 부담을 주면서도 어떤 날은 술술 글이 써지기도 한다. 그리고 감사해진다. 덕분에 오늘도 글을 쓸 수 있었으니까.



  슬며시 상상해 본다. 쓰는 하루하루가 모이면 작가라는 꿈을 이루는 바탕이 되지 않을까. 꿈을 꾸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 여기에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앞으로 원하는 모습도 떠올려본다. 언젠가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니까 초조하지 않고 편안하다. (세상에, 꿈이 있으면 그것을 얼른 해내고 싶어서 불안하고 초조해하던 내가 아니었나. 글을 쓰면서 나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꿈을 꾼다. 꾸준히 글을 쓰고, 출간 계약을 하고, 여러 권 책을 낸 에세이 작가가 되었다. 거실 책장에 보지 않던 책들을 비워내고 나만의 책장을 만든다. 여러 번 읽고 밑줄을 긋고 여기저기 메모를 한 소중한 책들을 꽂아두고, 비워둔 왼쪽 한 칸에는 내가 쓴 책들을 가지런히 꽂아둔다. 아이들은 엄마 이름이 적힌 책을 보고 신기해하면서 책을 후루룩 넘겨보기도 한다. 23년 가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어느새 나는 읽고 생각하고 쓰는 사람이 되었다. 일상을 눈과 귀에 담고 글로 써낸다.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글에 덜어내고 평화롭고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괜찮다고 위로를 받고 앞으로 나아갈 조금의 힘을 얻기도 한다.

  정말로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 쓰는 일을 내려놓지 않고 계속 써 나간다면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사실 잘 모르겠다. 무엇이 정말로 원하는 꿈인지. 작가라는 꿈이 다른 사람의 기대가 들어간 꿈은 아닌지, 멋져 보이고 싶어서 꾸는 꿈은 혹시 아닌지 생각해 본다. 원하는 것을 찾는 연습을 해보지 않아 서툴다. 이유야 어찌 됐건 하고 싶은 일이 생겼으니 조금씩 하다 보면 정말로 원하는 것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늦지 않았고, 지금이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씩 해보는 거다.


사람들은 내게 이미 늦었다고 말했지만
지금이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거든요.

-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중에서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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