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기 바람에도 행복했던 나의 여름 순간
- '블로그 질문' 중에서
숨이 턱턱 막혔다. 여름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지난여름은 해도 너무 했다. 밖에 잠시 서 있기만 해도 햇볕에 녹을 것 같은 더위가 한참 이어졌으니까.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추분이 지나도 더운 기운은 쟁쟁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여름의 순간에는 추억이 톡톡 쌓였다. 물놀이, 녹차밭 여행, 밤 산책, 일주일에 몇 번이고 사 먹었던 아이스크림. 다 좋았지만, 여름의 순간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이 난 건 즉흥적으로 들어간 카페에서의 십여 분이었다.
한낮, 더위의 정점인 8월의 두 시.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니던 거리였지만 여름에는 그럴 것이 아니었다. 저 정도쯤이야. 이글거리는 해를 보며 살짝 무시했다. 평소처럼 걸어서 운동삼아 가지 뭐. 모자와 양산을 쓰고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울이는 쨍쨍한 하늘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차 안 타고 왔어?
운동 삼아 걸어가면 되지. 바로 코 앞인데 뭘.
엄마, 이런 날은 차를 가지고 왔어야지!
아이의 말에 별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먼 거리라고 생각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걷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왜 차를 두고 왔을까. 오늘은 아이와 20분 넘게 걸어야 했다. 학교에서 집에 들렀다가 책가방을 두고 다시 아이 학원에 가야 해서다. 해는 여전히 쨍쨍했다. 아이도 나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땀이 맺혔다. 무엇보다 학원 수업 시작 전까지 남은 20여 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가 문제였다. 집까지 가기에는 지쳤고, 그렇다고 놀이터에서 기다리기에는 바깥이 너무 뜨거웠다.
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에 머쓱하고 짠해졌다. 어쩌지. 답답한 마음에 두리번거리는데 눈앞에 카페가 보였다. 감사합니다! 평소에는 잘 다니지 않던 곳이었지만 이번에는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울아, 우리 카페에 들러서 시원한 거 마시자.
울이 눈이 반짝였다. 카페 문을 여는 순간 에어컨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더위에 지쳤던 아이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학원 수업 시간 전까지 딸기라테를 마시면서 쉬기로 했다. 에어컨 바람과 차가운 라테 덕분에 몸도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래, 이거지. 이게 행복이지.
평범한 카페에서 라테 한 잔에 우리는 금세 말이 많아졌다. 이글거리던 햇볕과 더위가 아니었으면 이곳에 들를 생각도 없었겠지. 아마 몰랐을 거다. 사소한 행복은 곁에서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고,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초록을 뽐내던 나뭇잎에 노란빛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낙엽비가 내리기도 한다. 언제 여름이 지나가려나 기다렸는데 문득 한번씩 이글대던 여름이 아주 조금 그립기도 하다.
이미지: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