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역할은 이것
안녕하세요. 라엘 발레입니다. 저희 라엘에서 콩쿨반 2기를 모집하게 되었습니다. 참석 여부를 아이와 상의하시고 이번 주 토요일까지 연락 주시면 됩니다.
울이가 다니는 발레 학원에서 콩쿨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메시지가 왔다. 콩쿨을 준비하려면 11월부터 4월까지, 토요일 오전마다 1시간씩 수업을 들어야 한다. 발레를 전공할 것도 아니고 굳이 콩쿨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주말에 여행을 갈 수도 있고, 여유롭게 늦잠도 자야 하고, 갑자기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혼자 울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오면서 꿍이를 챙기기도 해야 하니까 은근히 번거롭다. 남편의 생각도 비슷했다.
울이는 대회를 부담스러워했다. 작년에 콩쿨 1기를 모집할 때 참여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비슷할 거라 예상하면서 울이의 의견을 물었다.
엄마, 나 콩쿨 나가보고 싶어.
이번에는 울이의 생각이 달랐다. 2년 간 발레를 배워온 데다가 친구들도 나간다고 한다. 자기 실력을 무대에서 뽐내보고 싶기도 한 것 같다. 일주일에 두 번씩 발레를 배우고 있는데, 토요일에 한번 더 수업을 들을 필요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근한 질문으로 울이 마음을 바꿔보려고 시도했다.
울아, 토요일마다 수업 갈 수 있겠어? 그럼 늦잠 못 잘 텐데.
일요일에 더 자면 돼.
우리 주말에 놀러 가는 건 어떡하지?
발레 수업 끝나고 가면 되지.
콩쿨에 꼭 나가고 싶어?
응.
1에서 10까지로 하면 얼마큼 나가고 싶은 건데?
음, 9.5?
콩쿨에 나가고 싶은 이유가 있어?
좋은 경험을 만들고 싶어. 반장 선거에 나간 것도 좋은 경험이었고, 또 좋은 경험을 만들어보고 싶어.
'좋은 경험'이라는 말에 마음이 찌르르했다. 사소한 핑곗거리를 대느라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모른 척하려고 했다. 토요일에 내가 여유롭게 쉬고 싶어서 콩쿨 수업을 듣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낸 건지도 모르겠다.
울이는 지난 9월에 반장 선거에 나갔다. 올해 3월, 첫 반장 선거를 했을 때는 관심이 전혀 없더니, 2학기에는 달랐다.
엄마, 나 부반장 선거에 나가볼까 봐. 반장은 싫고 부반장은 해보고 싶어.
그러더니 혼자서 공약을 준비하고 외우고 말하는 연습을 했다. '준비물이 없는 친구에게 필요한 것을 빌려주겠습니다'와 같은 공약을 만들고 중얼중얼 입으로 연습하고 엄마에게 영상을 찍어달라고 했다.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신기했다. 선거하는 날, 친구와 동점을 얻어 재투표를 한 결과 떨어지긴 했지만 아이는 아쉬운 마음보다 뿌듯한 마음이 더 큰 듯했다.
부반장 선거에서 떨어졌던 일을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는 울이. 마음이 단단하게 잘 자라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슬며시 미소 지어졌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엄마가 조금 피곤하더라도 응원해 줄게. 그게 맞는 것 같아.
토요일 아침, 콩쿨 수업 첫날. 늦잠을 자고 시간에 쫓겨 부랴부랴 준비하면서도 울이는 기분이 좋다. 얇은 발레복에 도톰한 코트를 걸치고 발레슈즈를 챙긴다.
엄마, 나 발레복 입고 가는데 차 태워주면 안 돼?
5분 거리인데 걸어가자, 우리.
이렇게 얇은 옷 입고 걸어오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시무룩하게 입을 쭉 내밀면서도 발레학원을 향하는 울이의 발걸음이 살랑거린다.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향하는 길. 기분 좋게 차가운 바람, 한 손에는 달달하고 따뜻한 연유 라테를 들고 엄마의 기분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이미지: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