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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23. 2023

다시, 주말부부

의존형 아내이자 엄마입니다만,

  "아빠, 회사 팀장님 좀 만나고 올게."

  6살, 8살 아이들이 아빠 회사에 화가 났다.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났고, 이제 한 달에 2번, 주말에만 아빠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 아이들이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양손을 번쩍 들고 소리를 지르며 회사에 찾아가겠다고 했다. 남편은 그저 안타까운 표정으로 웃기만 했다




  발령 소식을 들은 건 지난 주말. 엄마 생신을 축하드리러 부산에 가는 길이었다. 남편에게 발령이 어떻게 됐는지 묻자, 순천으로 가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번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다시 또 주말 부부 시작인 걸까. 믿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가 막막해서 나도 모르게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나이 마흔을 앞두고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할 수 있다니. 눈물샘이 터진 듯 주룩주룩 눈물이 났다. 창피해서 그만 울고 싶었는데, 도리어 끅끅 울음을 참는 소리까지 났다. 남편은 그저 어깨만 토닥토닥 두드려 줄 뿐이었다. 왜 우는지 모른 채 울었지만, 생각해 보니 이유는 많았다. 혼자서 아이들을 키울 생각을 하니 막막했고,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돼서 무서웠고, 순천까지 왔다 갔다 고생할 남편을 생각하니 안쓰러웠고, 어제도 화냈는데 더 잘해주지 못한 게 아쉬워서 슬펐고, 회식에 야근에 늦게 퇴근했다고 타박했던 것이 미안해서 또 울었다.


  실낱 같은 끈을 붙잡는 심정으로 혹시 바뀔 가능성은 없는지 여러 번 물어봤지만 남편은 그저 아무 말이 없었다. 순천이면 여기서 차로 3시간이 넘게 걸린다. 격주로 토요일에 근무를 하는 날은 올 수 없으니, 이제 한 달에 2번 온 가족이 만날 수 있다.



  다시 주말부부라니, 벌써 몇 번째인지. 결혼 한 달 만에 차로 5시간 거리인 인천 송도로 발령이 났다. 일주일 동안 울었다. 첫 아이 임신 8개월에 서울로 발령이 났다. 4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하고 따라갔다가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왔다. 둘째 임신 막달에 대전으로 발령이 났다. 따라가는 건 아예 포기했다. 이번에는 순천. 남편은 요즘 소설 <태백산맥>을 열심히 읽어서 전라도로 발령 난 것 같다며 헛소리를 했다. 1년 반에서 2년 정도 있으면 프로젝트가 끝나니까 다시 여기로 발령 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는 말로 나를 위로한다.


  우리가 같이 산 시간과 떨어져 산 시간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비교해 다. 독립적이지 못하고 겁 많은 내가 혼자서 아이들을 책임지고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렵고 무서웠다. 누군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주말부부가 될 수 있다고 하고, 어떤 엄마는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불편하다고 하던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남편이 있어야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이 되는 사람이었다. 남편에게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눠야 힘이 나는 사람이었다.

  까칠이가 드디어 줄넘기 5급을 통과했어. 순둥이가 아침에 30분 동안 울면서 짜증을 냈지 뭐야. 달래느라 얼마나 힘들었다고. 새벽에 일찍 나가서 일하느라 피곤했지? 오늘 저녁에는 치킨 먹을까? 세상에 그 뉴스 봤어? 주말에 애들 좋아하는 키즈카페 가는 건 어때?

  도란도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매일의 시간들. 그것들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에 스위치가 꺼진 듯 온 세상이 까맣게 변했다. 아이들을 책임지고 잘해나가야 한다는 무거운 부담감이 나를 꽉 짓눌렀다.




  어제는 남편이 순천에서 머물 집을 계약하러 갔다. 아이들이 놀러 올 수 있게 괜찮은 곳으로 알아보겠다고 했다. 회사 근처에 있는 작은 원룸 사진 몇 장이 카톡으로 왔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남편은 그곳에서 지내게 된다. 남편에게 뭐가 필요할지 곰곰 생각해 본다. 우울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차분하고 담담했다.

  해외에 발령 난 것보다는 낫지. 순천은 3시간 정도니까 버스 타고 갈 수 있고, 곧 아이들 방학이니 1, 2주간 거기에 있어도 되겠지. 다른 지역으로 한달살이를 일부러 가기도 하는데, 남편 덕분에 오래 머물면서 순천 구경도 할 수 있겠네.

  며칠 축 가라앉아 있었더니 슬금슬금 긍정적인 쪽으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적은 준비물 목록(샴푸는 무실리콘으로 고르라는 말에 귀찮아하면서도 적어놓았다)


  어쩌면 나보다 남편이 더 외로울 수 있다. 퇴근 후 불 꺼진 집에 들어가 집안을 밝히고 티브이를 켜고 아이들이 보고 싶어 휴대폰 사진을 뒤적거리거나 영상 통화를 하겠지. 출근할 때 자는 아이들 모습을 바라보고 눈에 담아 가는 사람이라 순천에서 아이들을 얼마나 보고 싶어할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남편은 이번에 자격증 공부를 해보겠다고 했다. 결혼 전부터 하고 싶었던 공부인데, 어쩌다 보니 미뤄졌었다. 퇴근 후 유튜브나 보면서 혼자 여유롭게 쉬는 것이 샘났었는데,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말에 내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다니, 오랜만에 아주 조금 그가 멋지다.



  미리, 걱정에 걱정을 쌓아두고 슬퍼하고 무서워하지 말아야지. 걱정 따위 발로 뻥 차버리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조금씩 해나가야겠다. 엄마니까. 나약하고 겁 많은 불안쟁이 엄마가 아니라 씩씩하고 활기차고 신나는 엄마로 바뀌어가야지.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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