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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30. 2023

운전하기 좋은 날

운전 경력 8년차, 초보 운전자의 초행길

  “잘 다녀와. 파이팅!”

  남편이 손을 들어 응원을 보낸다. 눈에는 걱정스러움이 가득하다. 순둥이 운동회 날. 남편과 함께 가고 싶어서 한 달 전부터 근무일을 조정하라고 얘기했다. 운동회 전날까지 근무일을 바꿀 수 없냐고 물었지만 어렵다고 했다.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운동회에 참여해야 한다니. 다른 건 다 괜찮다. 다만, 운전이 문제다. 남편 없이 낯선 길을 20여 분간 운전해야 한다는 것이 두렵고 불안했다. 누군가 운동회 장소까지 순간 이동시켜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운전 경력 8년 차.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정해져 있다. 10분 거리의 회사, 동네 마트와 소아과, 유치원이 전부다. 자주 가야 하는 곳이었기에 내비게이션을 켜고 남편과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한 후에야 이곳들을 다닐 수 있었다. 운전은 가능하면 피했다. 될 수 있으면 걸어다니거나 버스와 택시를 탔다. 무거운 짐이 있으면 카트를 끌고 걷는 게 마음이 편했다. 비 오는 날, 아이가 차를 태워달라고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운전이 두려웠다. 주변을 다 살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 돌발 상황에 대한 무서움, 뉴스에 나오는 여러 사고들이 나를 더 움츠러들게 했다. 이제 운전을 시작한 옆집 엄마도 잘만 다니는데,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출처: 픽사베이)


  “이제부터 엄마 운전해야 하니까 주차할 때까지 너희들끼리 얘기하고 놀아.” 

  운전에 집중해야 한다. 몇 가지 주의 사항과 가는 길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본다. 미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오디오로 틀었다. 엄마에게 질문하지 말고, 너희끼리 놀아야 해. 이제 출발. 고작 20분 거리를 가는데, 몇 시간 장거리 운전을 하는 것처럼 비장하다. 다른 사람이 이런 모습을 봤다면 부끄러웠을 거다.


  8차선 도로. 2차선을 달린다. 여기로 계속 가도 될까. 직진 차선은 어디일까, 옆 차선일까. 차들이 속도를 낸다. 빠-앙, 나와 상관없는 소리에도 두리번거리며 잘못한 건 아닌가, 주변을 살핀다. 엄마가 지금 헤매고 있다는 것을 아는 까칠이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오디오에 집중한다. 궁금한 것이 많은 순둥이는 “엄마 처음 가 보는 길이야? 어려워? 저기 빨간색 건물이 있어!” 하며 엄마와 대화를 시도한다. 다정하게 아이의 말을 받아줄 여유가 없다. 앞을 보고, 옆을 보고, 뒤를 보고, 내비게이션을 보고, 속도까지 확인해야 한다. 아이들이 듣는 오디오마저 거슬려 꺼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오늘 운전의 하이라이트. 삼거리에 좌회전과 우회전으로 갈 수 있는 도로가 있다. 1차선은 좌회전만 가능하고, 2차선은 좌, 우회전이 모두 가능하다. 신호를 받으면 좌회전을 한 후 4차선으로 빠져야 한다. 남편은 한 번에 차선을 바꾸기가 힘드니, 처음부터 2차선에서 기다리다가 좌회전을 하라고 했다. 여기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면 오른쪽으로 가려는 뒤차들은 나 때문에 앞으로 가지 못하고 기다려야 한다. 

  “뒤에서 빵 해도 신호를 기다려. 뒤차 때문에 앞으로 나가면 지나가는 다른 차랑 부딪칠 수 있어.”

  민폐 운전이 될까 두려운 나를 잘 알기에 남편은 자세히 설명해 주며 괜찮다고 했다. 원래 여기는 좌회전, 우회전 차선이 가능하다고. 둘 다 해도 되는 곳이니 잘못된 게 아니라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니, 우측 깜빡이를 켜고 기다리는 뒤차가 빨리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초록불이 들어오면 바로 가야지. 언제 바뀔까 두근두근하다. 신호와 뒤차를 번갈아 본다. 시간이 더디다. 드디어 초록색 신호가 들어왔다. 좌회전을 한 후, 재빨리 4차선으로 이동했다. 아, 다행이다. 이제 목적지가 코앞이다. 목적지에 주차까지 완료. 아이들에게 잘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안전벨트를 풀었다. 남편에게도 잘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낸다.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존경스러워 보인다. 차선을 옮기고, 좁은 골목길에서 후진을 하고, 초행길을 편안하게 운전한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남편에게 오늘은 내가 운전할 테니 옆에서 편히 쉬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운전하기 좋은 날을 기다려본다.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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