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Nov 02. 2023

커피와 헤어질 때

카페인에 몹시 예민해졌습니다


  쌉싸름하지만 은근하고 깊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머리끝까지 시원해지고 싶을 때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부드럽고 진한 라. 당이 떨어질 때 연유 듬뿍 돌체라테, 우유 거품과 시나몬 향에 괜스레 우아해지는 카푸치노, 에스프레소에 아이스크림까지 행복해지는 맛 아포가토. 평소 자주 마시는 커피는 아메리카노와 라테지만, 기분에 따라 골라 마실 수 있는 커피는 휴대폰처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였다.    


    

  임신을 하면서 커피를 끊었다. 당장 금단증상이 나타났다. 기분이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커피 생각이 종종 났다. 길을 걷다 무방비로 커피 향을 맡을 때면 카페로 들어가 당장 주문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디카페인에도 카페인이 조금은 있다는 말에 아기를 생각하며 참았다. 아이를 위해서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다독이면서. 아이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자마자 믹스커피부터 쟁여두었다. 거리낄 것이 없으니 밥을 먹고 나면 자연스레 커피를 마셨다. 1년 넘게 식후 믹스커피를 마셨더니 몸의 변화가 느껴졌다. 천천히 살이 쪘고 쉽게 빠지지 않았다. 잠을 자주 깼다. 나무늘보마냥 몸이 축 늘어지고 늘 피곤했다.    

  

  우연히 '커피를 끊고 나타난 변화'에 대한 영상을 보고 커피를 참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다른 맛있는 음료도 많으니까 괜찮았다. 견디기가 힘들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커피를 마셨다. 전보다 많이 줄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서서히 멀어져 갈 무렵, 갑자기 어느 날부터 커피를 마신 후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몸이 늙은 건가.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새벽 3시까지 말똥말똥한 눈으로 잠을 청하다가 겨우 얕은 잠이 들었다. 그때부터 커피를 마시면 두근거림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눕기만 하면 바로 잠이 들던 나였는데,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면 팔다리가 저리고 다음 날 아침까지 두근거림에 힘들었다. 선뜻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다.


  "디카페인으로 주세요."

  약간의 금액을 추가하면 디카페인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힘들게 일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천 원을 더 내는 것이 아깝게 느껴져 카페인이 있는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밤이 되면 후회했다. 커피 마시지 말걸. 조금만 더 참을걸.



  카페에 혼자 앉아 좋아하는 소설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것은 놓칠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다. 안타깝게도 이제 내 몸은 카페인을 거부하고 있다. 커피와 서서히 멀어져야 한다. 가끔씩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며 아쉬움을 달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커피가 간절히 그리워진다. 커피 몇 잔에도 끄떡없던 젊었던 내가 그리워진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운전하기 좋은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