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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03. 2023

장현 도령과 도깨비 그리고 은호

우리는 서로의 어디에 끌린 걸까

MBC 드라마 <연인> 중

  드라마를 잘 보는 편은 아니다. 우연히 유튜브 영상에서 장현 도령의 애절한 눈빛을 보게 되었다. 잠깐이었는데도 그 눈빛이 마음에 남았다. 자연스럽게 드라마 제목을 검색했고, 짧게 요약된 영상까지 보았다. 그는 좋아하는 이에게 장난스레 농담을 건네다 어느 순간 마음을 툭 표현했다. "나에게 오시오." 여자 주인공도 아닌데, 그 한 마디를 듣고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발을 동동 굴렀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주인공의 안타깝고 애타는 상황이 떠올라 마음이 절절해졌다마흔을 코앞에 둔 아줌마가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다. 그것도 드라마 주인공을 보고. 어이없는 상황에 피식 웃음이 났다. 어떤 것에 푹 빠진 내가 낯설고 반가웠다. 맞다, 그러고 보니 장현 도령처럼 나를 설레게 한 역할들이 더 있었다.


  드라마 <도깨비>의 김신. 물기를 머금은 눈빛을 지닌, 가을과 어울리는 그는 처음에는 비장하고 강한 모습을 보이다가 어느 순간 설레발을 치거나 툴툴대기도 하는 귀여운 남자다. "우리 내일도 볼래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 주인공에게 가볍지만 진중하게 만날 것을 약속하는 나직한 목소리.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던 그의 담담한 독백에 내 마음이 요동쳤다. 아주 오래 전 방영된 <선덕여왕>의 비담. 까불거리고 장난치기를 좋아하지만 온마음을 다해 표현할 줄 아는 남자.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진지하고 그윽해지는 그의 표정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현 도령과 김신, 비담 그리고 한동안 나를 설레게 했던 역할은 봄바람처럼 따스하고 첫눈을 맞은 강아지마냥 유쾌하면서도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SBS 드라마 <연애시대> 중

  연애 시절, 그는 <연애시대>의 은호가 좋다고 했다. 은호 역을 맡은 손예진이라는 배우는 같은 여자가 봐도 맑고 밝고 예뻤다. 드라마 속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손예진이 좋은 게 아니라, 은호라는 '역할'이 좋은 거야."

  여자 연예인을 좋다고 말한 후 후폭풍이 올까 불안했던 걸까. 그는 배우가 좋은 것이 아니라 역할이 좋은 거라며 선을 그었다. 드라마 속 은호는 유쾌했다. 아이를 잃은 슬픔과 이혼을 겪었음에도, 가볍고 생기 넘쳤다. 삶이 주는 아픔에 주눅 들지 않고 당차게 살아가는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멋졌다.




  내가 좋아했던 그들과 그가 좋아했던 그녀, 서로가 좋아하는 모습들이 우리에게 있었을까. 남편은 도깨비, 비담의 외모와 비슷한 점이 전혀 없다. 푸근한 곰돌이에 더 가깝다. 가볍고 유쾌하기보다는 말수가 적고 진중한 편이다. 나 또한 은호와 거리가 아주 멀다. 외모뿐 아니라 성격도. 늘 지쳐 있고 피곤해한다. 그럼에도 남편과 내가 만난 것은, 그리고 8년째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것은 어딘가 서로에게 마음에 드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는 서로의 어디에 끌린 걸까, 괜히 궁금해진다.


(출처: 픽사베이)



* 이미지 출처

  1) 드라마 연인 https://program.imbc.com/Photo/mydearest?list_id=2637657&list_use=1&page=1&bbs_id=myde

  2) 드라마 연애시대 https://programs.sbs.co.kr/drama/yeonae/about/50822

  3) 픽사베이


*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_ 드라마 <도깨비> 중 김신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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