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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28. 2023

등원 후 라떼 한 잔,
하루를 시작하는 기쁨

부자가 되고 싶어졌어요

  하루의 첫 임무가 아슬아슬하게 진행 중이다.

  까칠이가 등교한 후, 순둥이가 유치원 등원을 할 차례. 버스를 놓칠까 봐 발걸음을 재촉했다. 늦을까 봐 아이 손을 잡고 서둘렀다. '안아줘 공주님'인 순둥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안아달라는 신호다. 아이를 품에 번쩍 안고 정류장으로 뛰었다. 다행히 이제 막 버스가 들어서고 있었다. 아이가 유치원 버스에 올라 안전벨트를 매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 아이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오늘의 첫 번째 할 일, 등교 등원이 완료되었다.


  오전 9:10. 

  한창 하루를 시작할 시간이지만 벌써 기진맥진이다. 아이들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아침에 깨울 때부터 부단히 노력하느라 너무 애를 썼나보다. 살포시 아이 발을 주무르고 버터를 바른 듯 고소한 목소리로 일어날 시간임을 알렸다. 다행히 오늘은 늦었다고 화내지도 않고, 기분 좋게 각자의 자리로 갔다.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집에 가는 길, 빵집에서 보드랍고 따스한 냄새 풍겨 다. 포스터의 여인은 푸른 색 셔츠를 입고, 한 손에 커피, 한 손에 베이글을 들고 있다. 아침은 이렇게 시작하라는 듯 여유있고 상큼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빵의 유혹은 물리칠 수 있지만, 그윽한 커피 사진에는 무너지고 말았다. 당이 필요하다. 마음에 쏙 드는 아주 맛있는 커피를 마셔야 하루를 시작할 힘이 날 것 같다. 커피를 마실 것인가, 말 것인가. 작 커피 한 잔에도 고민이 시작됐다. 집앞 단골 카페에서 디카페인 돌라떼 한 잔에 4,500원이다. 매일 먹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 나를 위해 쓸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은 이 추위에 고생하는데, 편안하게 커피를 마시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오늘은 마셔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기분 좋게 하루를 보내면 되지 뭐. 패스오더 어플을 켜고 커피를 주문했다. 카페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휴직 중임에도 오전에 카페에 가서 여유롭게 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부랴부랴 아이를 내몰듯 유치원 버스에 태우고 나면 집에 어지럽게 쌓인 옷가지와 장난감, 싱크대에 던져진 그릇들이 눈앞을 아른거린다. 이것들을 다 처리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집에 들어가 장난감을 제자리에 두고 매트를 털고 청소기를 밀었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도 물에 여러 번 헹궈 씻어냈다. 세탁기를 돌리는 것을 깜박했다. 뭐부터 빨아야 하나, 아이 외출복부터 해야겠다, 빨랫감을 세탁망에 넣고 세제를 한 컵 붓는다. 세탁기를 돌리고 의자에 앉아 잠시 멍해진다.


아침 설거지하는 시간


  일을 할 때는 오전에 카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들이 부러웠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간혹 깔깔 웃기도 하고 여유롭게 브런치를 즐기는 모습을 생각할 때면, 그렇게 좋아보일 수가 없었다. 휴직하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즐기는 삶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막상 휴직을 하니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청소 조금 하고, 설거지 하고, 잠시 멍하게 앉아 있으면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뭔가를 아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 걸까. 

  무언가 꽉 조이는 듯 마음이 답답한 날에는 집안일을 모른 척하고 카페로 나가 좋아하는 라떼를 마시기도 했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때는 아무 걱정 없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다 비워지고 하나에만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 좋다. 집안일은 다른 누군가가 해 주고, 매일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살면 참 좋겠다는, 이루기 어려운 상상을 한다. 아주아주 부자가 되면 가능하려나.


  집에 앉아 설거지와 청소를 외면한 채, 창가로 갔다. 라떼 거품 속 하트 모양을 지그시 바라보며 위로를 받는다. 햇볕을 받으며 달달하고 쌉싸름한 커피를 마셨다. 따뜻하다. 커피 한 모금에 온갖 시름이 사라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이걸 먹으면 살은 또 얼마나 찔까, 두둑해진 뱃살을 내려다 보고 한숨짓지만, 커피를 포기할 수가 없다. 오늘도 수고했다. 아침에 늦었다고 또 화낼 뻔했지만 잘 참았다. 아이들이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해서 다행이다. 이제 뭘 해야 할까. 커피로 충전한 몸과 마음이 일어설 준비를 한다.

                                                                                                       



하단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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