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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Dec 01. 2023

집에 시계가 몇 개 있나요?

올라갈 때에도 '꽃'을 보는 법

  까칠이가 눈물을 보였다. 아침마다 엄마는 고함을 지르고, 아이는 눈물이 맺혔다.


  10분 남았어. 5분 남았어. 이렇게 놀면서 밥 먹을 거면 옆집 하영이한테 먼저 학교 가라고 할게. 언제 치카하고 옷 입고 머리까지 다 묶어. 빨리빨리 좀 하랬잖아. 내일부터는 아침에 깨울 때 바로 일어나. 시간 다 됐어. 빨리 옷 입어. 엄마가 미리미리 하라고 했지!

  조급한 마음을 숨긴 채 아이가 늦지 않게끔 시간을 알려주려고 했다. 잔소리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니 음계를 타듯 점점 높아졌고, 결국 짜증과 분노로 끝났다. 졸려서 겨우 일어난 아이를 늦었다고 닦달했다. 말이 뾰족하게 튀어나가는 것을 느꼈다. 느긋하게 준비하자고 생각을 했으면서도, 시린 겨울 바람처럼 말투가 매서워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순둥이가 그린 그림, 엄마가 또 화났다


  현관문을 나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 까칠이의 어깨가 축 처져있다. 눈은 바닥을 향한 채 엄마를 보지 않았다. 시무룩한 아이를 보니 안쓰러워졌다. 이렇게 학교에 보내면 하루 종일 후회할 것 같았다. 내 마음 편하자고 아이가 가버리기 전에 급하게 사과하기로 마음 먹는다. 아이를 꼭 안았다.

  "엄마가 화 내서 미안해. 속상했지."

  까칠이는 품에 안기더니 아주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결국 시간을 맞출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초조해했을까. 엄마의 긴장감을 그대로 느낀 아이는 시간 안에 준비를 못 끝낼까봐 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늦어도 되는데. 지각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를 들들 볶았다. 까칠이도 조급하고 불안해했다. 아이가 나처럼 발을 동동거리며 애달아하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불안감이 옮아가고 있었다. 초조하고 걱정 많은 아이로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집에 시계가 8개 있다. 휴대폰과 다른 기능을 가진 것까지 시계에 포함하면 개수는 더 늘어난다. 시선을 돌렸을 때 시간을 확인할 수 있어야 안심이 되었다. 시계가 이 정도 있는 것은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언젠가 집에 놀러왔던 지인이 집에 시계가 많은 이유를 물은 후에야 개수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에 연연하고 조급한 습관은 고치려고 해봐도 쉽지가 않다. 어쩌면 그동안 쫓기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다. 해야할 일은 많았고, 남은 시간을 확인하며 다급하게 살았다. 몸이 여기서 할 일을 하는 동안, 마음은 벌써 다음 할 일들로 달려가고 있었다. 시간을 알차게 쓰고 마음, 의미 있고 보람 있게 쓰고 싶다는 그럴싸한 욕심으로 나를 닦달해 왔다.

  목표는 매번 새롭게 생겼다. 어릴 때는 학교 시험을 잘 치고 싶었다. 고3 때는 수능 공부를 열심히 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취업이라는 목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을 하게 되면서는 업무를 잘해내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남들은 괜찮은 남자친구도 있고 결혼도 잘하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할까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하나를 이루고 나면 새롭게 나타나는 목표가 생겼고, 앞으로만 달려가느라 정작 그 순간이 얼마나 빛났는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시간과 압박감에 쫓기다 보니, 사는 것이 버겁고 고단했고 우울했다. 한 고비만 넘기면 괜찮을 줄 알았고, 그 일만 해내면 행복해질 것 같았다. 마침내 기다리던 순간을 맞이했을 때도, 기쁨은 잠시 반짝했을 뿐. 금방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해마다 일주일 넘게 밥을 거의 못 먹기도 했고, 목소리가 한동안 나오지 않기도 했다. 기운이 없고 여기저기 욱신거렸다. 사는 게 재미 없었다. 몸과 마음이 주는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나에게 필요했던 건, 스스로를 인정해주는 거였다.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그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5년 후를 상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 어떤 것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돈과 명예, 부유함이 아니라 여유롭고 느긋하고 편안한 내 모습이라는 것을. (물론 돈과 명예, 부유함도 소중하지만.) 지금처럼 '빨리 빨리'를 몸에 익힌 삶을 살다가는 원하는 모습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당장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편안하고 여유로울 수 있는 거 아닌가. 그게 뭐 그리 어려울까 생각이 들었다가도. 정말로 느긋해지기는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잘해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보았던

  그 꽃

       - 고은, 그 꽃

        

  내 잘못이 아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다들 그렇게 쫓기듯 열심히 달리면서 살아왔을 거다. 얻은 것들도 많다. 다만, 이제는 초조하고 다급한 마음을 비워내고 조금씩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지금이 얼마나 빛나는 순간인지 오롯이 만끽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오늘은 잠시 멍하니 있어야겠다. 길가의 작은 들꽃을 보는 기쁨과 따뜻한 햇볕에 몸을 맡긴 채 나뭇잎을 주워 가만히 쳐다보는 시간도 가져봐야겠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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