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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Dec 07. 2023

초대받지 못한 무

엄마는 왜

  엄마는 왜 무를 보냈대.

  뽀얗고 매끄럽고 단단해 보이는 네 개의 무. 심각하게 무를 쳐다보는 나에게 그가 머쓱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감해하는 나를 보는 것이 민망했던지 남편은 괜히 어머니 탓을 했다. 3주 전, 시갓집에 다녀오면서 아이스박스를 가져왔는데, 안에는 어머님께서 만드신 깻잎 반찬과 단감, 사과, 그리고 신문지에 싸인 네 개의 커다란 덩이들이 있었다. 신문지를 열어보니 단단하고 싱싱한 무가 들어 있었다. 하나하나 정성스레 종이로 싸서 상하지 않도록 보내신 마음을 생각하니 마음속이 뜨뜻해졌다. 게다가 어머님께서 텃밭에서 애써 기르신 무가 아닌가. 고운 이 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요리를 싫어한다. 한 가지 반찬을 만드는 데 휴대폰이나 책에 나온 레시피를 확인하면서 만드느라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다. 요리가 끝난 후 싱크대에 수북이 쌓이는 양념 묻은 그릇과 냄비를 설거지할 일은 더 무섭다. 요리가 하기 싫으니, 일한다는 핑계로 외식을 하거나 반찬가게를 종종 이용했다. 휴직한 후에도 요리는 아주 간단한 것들만 했다. 도깨비방망이를 두드리는 것처럼 빠른 시간에 여러 가지 반찬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등 집안일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


  무가 들어간 음식을 잘 먹지 않아서 마트에 가서도 굳이 사지 않는 편이었다. 집에 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고, 부피가 커서 하나를 사도 버리게 되는 일이 많았다. 어른 손바닥보다 훨씬 큰 무를 네 개나 얻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타까웠다. 

  어떻게든 먹겠지. 천천히 생각해 보자. 

  무를 종이에 싸서 아이스박스에 넣은 뒤 주방 베란다에 가져다 두었다. 분리수거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 하루에도 몇 번이고 보이는 아이스박스는 빚을 독촉하는 채권자처럼 마음을 무겁게 했다. 언젠가는 먹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벌써 3주째 무는 종이에 싸인 채 박스에서 쉬고 있었다.




  이제 좀 만들어서 먹지 그래. 

  베란다에서 무가 하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한쪽 구석에 보릿자루처럼 방치된 무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상태가 궁금해 만져보니 2개는 바람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다 다 버려지는 거 아닌가. 불안한 마음에 무를 어떻게든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네이버 검색창에 '아기 무 반찬', '무 반찬 레시피'와 같은 것들을 검색했다. 주로 무나물과 무 김치가 나왔다. 무나물은 아이들이 안 먹을 것 같고, 무 김치는 너무 어려울 거 같다. 옆집 엄마에게도 어떻게 먹는지 물었다. 

  무 장아찌 어때? 할 때는 번거롭긴 하지만 만들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고, 맛있어. 무나물도 쉬운데. 채로 썰어서 팬에다 푹 익히고 간하면 돼.

  설명을 듣고 보니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시피를 찾아보니, 장아찌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를 잘라서 소금에 이틀 정도 절여야 하고, 물기를 쏙 뺀 무를 간장에 푹 끓여야 했다. 이틀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한 가지 반찬을 하는데 이렇게 공을 들여야한다는 말인가. 그동안 먹었던 무 장아찌에는 수고로움과 고생이 여간 들어간 게 아니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하는 음식이었다. 먹고는 싶지만, 직접 하기에는 장아찌는 땡. 이건 사 먹어야하는 반찬이다. 무나물은 어떨까. 생각보다 간단했다. 무를 하나 꺼내서 깨끗이 씻었다.


  레시피마다 방법이 조금씩 달랐다. 무를 반으로 자르고 채를 썬 뒤, 소금에 절였다. (쓴맛을 빼기 위해 물에 담가두라는 데도 있다.) 무를 물에 헹군 후 팬에 담고 푹 익혔다. 그릇에 담아 들기름을 넣고 깨를 뿌렸다. 사진으로 찍어보니 그럴싸한 모습이다. 자신 있게 남편에게 맛을 보라고 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눈이 동그래지며 맛이 괜찮다고 했다. 까칠이와 순둥이 입에도 하나씩 넣어줬다. 

  웩.

  아이들이 바로 뱉었다. 엄마가 열심히 만든 건데, 기운이 쭉 빠졌다. 내가 다 먹어야 할 것 같다. 나도 무 별로 안 좋아하는데.


  무나물을 하고 남은 무가 반통이 남아 있다. 전에 남편이 어묵국에 무가 들어가면 국물이 시원할 것 같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깍둑썰기를 해서 어묵국에 넣어봐야겠다. 멸치를 푹 우려낸 육수에 무를 넣고 간장으로 간을 했다. 한 번 데친 어묵을 넣고 미리 풀어낸 달걀을 넣었다. 대파도 송송. 끓이다 보니 물이 부족한 것 같다. 국물이 자작하게 됐다. 어묵국은 국물이 중요한데. 완성된 국물을 떠 먹으며 시원하고 맛있다던 남편은 한 마디 덧붙였다.

  무가 너무 큰데. 다음에는 좀 더 작게 자르면 좋겠어.

  무 반통이 자르는 게 귀찮아서 큼직하게 잘랐더니 보기에도 먹기에도 불편한 국이 되었다. 


어딘가 부족한 무나물과 어묵국. 엄마는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무 하나로 무나물과 어묵국을 끓였지만, 아직 싱싱한 무가 하나 더 남아 있다. 이것도 말랑말랑해지기 전에 뭔가 만들어야 한다. 뭘 하면 좋을까?


  (여러분, 쉽고 맛있는 무반찬을 간절히 찾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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