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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Dec 05. 2023

편식쟁이 아이를 위한 레시피

오늘 저녁은 노릇노릇 소시지달걀전입니다

  오늘은 뭘 먹지. 뭘 먹여야 하나. 매일 하는 고민이지만 답이 없다. 까칠이는 아기 때 주는 대로 잘 먹었다. 간을 전혀 하지 않은 이유식도 꿀떡꿀떡 잘 먹어서 엄마를 뿌듯하게 했으니까. 5살이 되도록 아기들이 먹는 쌀떡뻥을 맛있게 먹는 아이였다. 찐 고구마를 먹자고 부르면, 놀다가도 달려와서 눈을 반짝이던 아이였다. 통통하고 보드라운 볼살을 볼 때면 엄마는 보람차고 흐뭇했다.

  지나친 조심스러움과 예민함이 문제였을까. 달걀을 먹고 몇 번 토하고 열이 난 후로, 달걀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음식을 주지 않았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여러 가지 이유로 가리는 음식이 늘어갔다. 게다가 엄마인 나부터 채소를 즐기지 않는 편식쟁이라 아이도 자연스레 닮아간 것 같다. 8살이 된 까칠이는 좋아하는 반찬이 별로 없다. 늘 고민이다. 뭘 먹여야 할지 모르겠다. 나야 라면을 끓여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우거나 귀찮으면 굶고 넘어가도 되지만,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요리가 정말 싫고 귀찮고 못하는 편이지만, 엄마니까 해야 한다. 아이가 밥을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



 

  키가 11%예요. 몸무게는 30%. 태어날 때는 체중이 정상인데, 지금 성장이 더딘 건 '엄마의 잘못'입니다.

  6살 순둥이의 영유아검진에서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미 알고 있다. 아이들이 살이 많이 빠졌고, 키도 또래보다 작다는 것을. 전문가에게 내 탓임을 확인받고 나니 자존심이 바닥으로 쭉 가라앉았다. 부끄럽고 참담했다. 아이들이 밥을 싫어한다. 밥보다 간식을 찾는다. 밥상에서 잔소리를 많이 해서일까. 돌아다니지 말고 앉아서 먹으라고 야단치고, 흘리면 자꾸 화내서 애들이 밥을 싫어하는 건가. 엄마가 만든 음식이 너무 별로여서 그런 걸까. 원인을 찾아 나를 추궁했다.



  지난 토요일 아침. 순둥이가 일어나 거실로 나오면서 말했다.

  마이쭈 주세요.

  안돼, 밥이 먼저야. 밥 먹고 나서 줄 거야.

  밥 싫어, 먹기 싫어. 맛 없단 말이야. 마이쭈 줘!

  아침에 눈 뜨자마자 순둥이가 마이쭈를 달라고 짜증을 내는 통에 하마터면 아이 손에 덥석 쥐어줄 뻔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간식을 주겠다고 했더니, 엄마를 노려보며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흘린다.

  안 주겠다는 게 아니고, 밥이 우선이라는 거잖아. 밥 다 먹고 나면 고래밥도 줄게.

  아이들은 엄마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알고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마이쭈를 먹기 위해, 고래밥을 먹기 위해,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월요일은 까칠이가 점심을 먹고 바로 하교하는 날이었다.

  엄마, 배고파. 우리 돈가스 먹으러 갈까?

  방금 학교에서 밥 먹고 나왔잖아.

  좋아하는 게 없어서 조금 먹었어.

  학교 급식에서 제일 맛있었던 반찬이 뭐야?

  음, 샤인머스캣? 쿠키?

  후식 말고, 반찬을 얘기하라고 하니, 맛있는 게 없단다. 급식은 잘못이 없다. 다른 집 아이들은 두 그릇씩 밥을 먹는다고 하던데. 이건 우리 아이 입맛이 문제다.




  까칠이는 어떤 반찬도 맛이 없나 보다. 집에서는 그나마 맛살전을 해 주면 맛있게 먹는다. 맛살을 잘게 잘라 달걀에 버무려 부쳐주면 되니 만들기도 쉽다. 맛살전을 잘 먹는다고 이것만 해줄 수는 없는 법. 냉장고 속을 노려봤다. 뭐가 좋으려나. 뽀로로 소시지가 눈에 띄었다. 오늘은 소시지전이다.


  소시지를 잘게 잘라서 끓는 물에 데쳤다. 달걀을 풀어 데친 소시지를 넣고 섞었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소시지가 든 달걀물을 풀어 굽는다. 요리 귀차니즘 엄마가 할 수 있는 쉬운 반찬 하나 완성. 까칠이가 냄새를 맡고 달려왔다.

  엄마, 한 입만 줘.

  다행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실컷 만들었는데, 보자마자 '으웩'이라며 인상을 쓰거나 입에 대지도 않을 때면 속상했다. 누구 위해서 만들었는데, 내가 먹으려면 이렇게 고생해서 만들지도 않아. 언젠가는 고기도, 채소도, 무엇이든 맛있게 잘 먹는 날이 오기를.


  얘들아, 우리 저녁 먹자!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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