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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Dec 12. 2023

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기했다

엄마의 미션이 시작된다

  크리스마스 아침. 트리 밑에 둔 양말 속 선물을 확인하고 아이들 표정에 숨길 수 없는 웃음이 가득하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폴짝폴짝 뛰면서 산타할아버지께 감사하다고 말한다. 엄마아빠는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만 알 수 있는 눈짓을 교환한다.

  

  그런데 양말 속에 원하지 않는 선물이 들었거나 아예 비어있다면.




  크리스마스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11월 말이 되면 마음이 초조해진다. 엄마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고 은근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선물 준비. 크리스마스가 다 되어서 조급하게 준비하지 않으려면 어떤 선물이 갖고 싶은지 미리 알아야 한다. 시간이 다 되어 주문했다가는 25일이 지난 후 택배가 도착하는 일이 생길 수 있어서다. 선물을 받지 못해서 아이들이 실망하는 표정을 생각하면 벌써 아득해진다. 까칠이와 순둥이가 바라는 선물은 무엇일까. 생각날 때마다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슬쩍 물어보는 중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싶은 까칠이




  까칠이의 선물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물어볼 때마다 일관성 있게 산리오 스티커북을 이야기했다. 부모의 고민스런 마음을 아는 분이 또 계셨다. 담임선생님께서 12월 초가 되자 그림일기 숙제를 내주셨다.

  받고 싶은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그림일기에 적어오세요.

  덕분에 까칠이가 받고 싶은 선물은 일찌감치 알 수 있었다. 일기장에 빨간색 밑줄이 왜 이렇게 많은가 봤더니, 아이가 받고 싶은 선물에 하나하나 밑줄을 그어주신 거였다. 게다가 센스 있는 코멘트까지. 원하는 선물을 받고 싶은 아이 마음을 헤아려주는 동시에 아빠엄마에게도 선물 목록을 알려주는 문장을 읽으면서 슬며시 웃음이 났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까칠이의 그림일기


  까칠이의 선물은 확인했지만, 아직 순둥이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물어볼 때면 친구 장난감이라고 하거나 더 자세히 물어보면 엄마는 모르는 거라고 대답했다. 다음 날 물어보면 받고 싶은 것이 바뀌었다. 같은 선물을 얘기할 때까지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준비하는 기간이라 이제 받고 싶은 선물이 바뀌면 안 된다고 은근한 경고를 하면서.


  순둥아, 올해 착한 일 많이 했어? 산타할아버지한테 무슨 선물 받고 싶어?

  잠시 생각하더니 아이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난 그냥 선물 안 받을래.

  받고 싶은 것들 중에 하나를 고르느라 고민할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착한 일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이는 생각지 못한 대답을 했다.

  산타할아버지 힘들잖아. 집집마다 선물 주러 다니려면 바쁘니까 난 그냥 안 받을래.

  예상대로라면 신중하게 고민한 뒤 순둥이가 꼭 받고 싶은 선물을 듣고, 우리 함께 산타할아버지께 소원을 얘기해 보자고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예상치 못한 대화의 흐름에 엄마 마음이 다급해졌다. 원하는 선물을 꼭 알아내야 하는데.

  아니야, 순둥아. 산타할아버지는 착한 어린이에게 선물 주는 거 좋아하셔.

  난 괜찮아. 산타할아버지 선물이 많아서 무겁고 힘드실 것 같애.

  아이는 걱정하고 있었다. 산타할아버지의 선물 보따리가 무거울까 봐. 집집마다 돌아다니려면 힘들까 봐. 누군가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고운 마음을 잘 지켜주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자기 것을 잘 챙기지 못하고 양보만 할까 걱정되는 엄마의 불안이 마음 저 깊은 곳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전에 아이들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생기면 거실에 있는 자석 칠판에 적어두라고 얘기해 둔 적이 있다. 순전히 내 편의를 위해서. 엄마는 적어 둔 것을 보고 잊지 않고 선물을 주문할 수 있다. 아이들도 적으면서 마음이 자꾸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순둥이가 선물을 포기했다. 대화를 듣던 까칠이는 칠판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순둥이는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받지 않는다고 적어 두었다.


순둥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기했다




  2주 후 크리스마스 아침에 양말 속 선물을 확인하는 시간. 까칠이와 순둥이가 함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순둥이의 선물은 엄마가 정하는 걸로. 독심술이 필요하다.

  순둥아 네가 좋아할 만한 걸로 산타할아버지가 챙겨주셨나 보다. 산타할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에 고마워하시면서. 선물을 챙겨주면서 산타할아버지도 행복하셨대.

  25일 아침, 순둥이에게 저렇게 말해주고 싶다. 자기 몫을 잘 챙기지 못할까 걱정되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테다. 다른 사람의 힘듦과 수고스러움에 감사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 누구나 쉽게 가지지 못하는 반짝거리는 마음을 지켜갈 수 있도록. 그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위로와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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