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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Dec 29. 2023

오늘 학교에서 어땠어?

엄마는 너의 이야기가 궁금해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꿍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 이거 어때? 유치원 버스에서 어떤 오빠가 이거 보고 못생겼다고 했어."

  꿍이는 만들기 작품을 손에 들고 잘 살펴보라는 듯 나에게 내밀었다. 부루퉁함이 가득 묻은 목소리다. 나를 보자마자 말을 꺼내는 것을 보니 버스에서 꾹꾹 참다가 얼른 털어놓고 싶었나 보다. 만들기 작품이 못생기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걸까.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오빠가 그렇게 말해서 기분이 어땠어?"

  "속상했어."

  "우리 꿍이가 많이 속상했구나. 엄마가 보기에는 멋진데. 오빠가 그렇게 말해서 속상했겠다."

  아이의 마음을 풀어주고 알아주려 말해보지만, 그래서 기분이 나아지기를 기대해 보지만, 반응이 영 미적지근하다.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를 잘하지는 않는 편이다. 옆집 아이는 물어보지 않아도 하나부터 열까지 시시콜콜 엄마에게 얘기한다고 했다. 내 아이의 이야기를 옆집 엄마에게서 들을 때면 아이와 소통이 부족한 엄마가 되는 것 같았다. 아이의 생활이 재미있는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친구들과 사이는 좋은지 궁금한 것이 많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지만 아이가 조사하고 심문받는 것처럼 느끼고 하려던 말조차 하지 않을까 봐 궁금한 것을 속으로 삼킨다. 대신 아이가 스스로 얘기할 때마다 잘 들어주려고 하는 중이다.


  꿍이가 주로 얘기하는 것은 유치원에서 친구와 겪었던 불편한 감정들이다. 친구가 새치기를 했다거나 자기에게 안 된다고 했다거나 오늘 입었던 옷이 예쁘지 않다고 했다거나. 한 번씩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에게 유치원은 어떤 곳일지 슬그머니 걱정과 불안이 올라온다. 예전에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한 친구와의 불편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 결국 옮겨버렸다. '너는 이거 없지. 오늘 입은 옷 안 예뻐. 머리핀 예쁘니까 나 줘. 너는 이거 하지 마.'와 같은 말을 들었다며 자주 속상해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힘들었던 마음을 헤아려줬지만 별 도움이 안 됐다. 일 년 가량 그런 일이 반복되니 나도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힘든 부분이 있다면 환경을 바꿔주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해서 유치원으로 옮겨도 보았다. 한 친구와의 관계가 문제이니 그것만 해결하면 될 줄 알았다.

  유치원에서 빈도는 줄었지만 속상한 일은 생겼다. 관계에서 어떻게 문제가 없을 수 있을까. 갈등은 당연히 생기는 거였다. 그때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인정하고 잘 털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엄마의 역할인 것 같다. (그게 쉽지 않아서 고민이지만.)




  꿍이의 언니인 울이는 학교에서 겪었던 부정적인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친구와 다퉜거나 속상했던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이다. 줄넘기 급수를 통과했거나 받아쓰기를 백 점 받았다는 자랑할 만한 이야기를 한다. 울이가 어렸을 때는 달랐다.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재잘거리며 잘 이야기했다.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이 어떤지 금방 그려져서 마음이 놓였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울이가 어린이집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가 무심코 툭 던진 말에서 불편함을 잡아내고 호들갑스럽게 반응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한 적이 있었다. 아이의 감정을 무던하고 편안하게 받아주지 못하고 아이보다 더 안절부절못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초조해했다. 아이는 보았을 거다. 엄마의 걱정 가득한 불안한 모습을. 그때부터였을까. 울이는 엄마가 속상해할 만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아이는 엄마가 보는 대로 자란다고 한다.

  아이는 엄마가 믿는 대로 자란다고 한다.

  엄마가 불안하게 보면 아이가 불안하게 자라고, 엄마가 의젓하게 보면 아이가 의젓하게 자랄 것이다.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생각보다 잘 느끼는 것 같다. 내 감정에 휩싸여 초조함과 걱정의 눈으로 아이를 대할 것이 아니었다. 어른이지만 아직도 마음을 다스리고 조절하는 것이 어렵고 미숙하다. 그럼에도 엄마이니까 조금 더 노력해보려고 한다.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에 불안함을 걷어내고 따뜻함과 기특함으로 채울 수 있기를 바라며.


  울이야 꿍이야. 엄마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거 보이니?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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