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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06. 2024

드림렌즈야 도와줘

왜 그게 안 돼?

  두 번째 렌즈 착용이 실패했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 신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듯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번만 더 시도해 보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아이도 직원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0.7이었던 아이의 시력이 두 달 만에 0.4, 0.5로 떨어졌다. 이번에는 드림렌즈를 꼭 해야 한다고 울이를 설득했다. 아이도 상황을 이해하고 해 보겠다고 했다. 드림렌즈를 착용하고 잘 관리해서 더 눈이 나빠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희망을 갖고 안과에 갔다.

  걱정했던 대로 안과에서 렌즈를 넣는 것이 잘 되지 않았다. 드림렌즈를 넣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울이가 이미 알고 있고, 3일 만에 렌즈 착용을 중단했던 적이 있어서 아이는 렌즈 앞에서 눈조차 뜨지 못했다. 5분간 쉬었다가 두 번째, 세 번째 시도를 했지만 눈을 떴다가도 렌즈가 가까이 다가가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여전히 무서웠던 거다.




  지난가을, 아이 근시가 의심된다는 학교 검진 결과를 듣고 안과에 찾아갔다. 근시 초기인 것 같다며 드림 렌즈를 권유했다. 성장기라 눈이 점점 나빠질 것이니 근시를 억제하는 드림렌즈나 약물 치료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거였다.

  눈이 나쁜 게 엄마를 닮았나 봐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명치를 훅 뚫고 지나갔다. 나도 8살 때부터 안경을 썼다. 시력이 점점 떨어져서 중학생이 됐을 때에는 압축을 서너 번 해도 여전히 두꺼웠던 뱅뱅이 안경을 썼다. 6개월마다 한 번씩 안경을 맞출 때마다 떨어진 시력을 교정하느라 안경 렌즈를 바꾸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소프트 렌즈, 하드 렌즈를 십 년 가까이 썼다. 하루종일 렌즈에 시달리느라 눈이 뻑뻑했고, 이물질이라도 들어가면 눈물을 쏟아내는 불편함이 따랐다. 그러다 29살에 라식을 하고 안경과 렌즈 없는 세상의 편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눈이 나쁜 것이 얼마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인지 잘 알고 있어서 마음이 쓰렸다. 아이가 내가 했던 고생을 겪어야 하다니. 아이의 근시 진행을 막고 싶었다. 내가 했던 고생을 아이가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드림 렌즈의 부작용은 없는지 네이버와 맘카페를 검색해 본 후 바로 드림 렌즈를 착용하기로 했다.


  안과에서는 수월하게 렌즈를 잘 꼈다. 문제는 집에서였다. 렌즈가 들어가기에 눈이 작아서 손으로 눈꺼풀을 잡아줘야 했다. 렌즈를 눈에 넣을라치면 아이 눈동자가 위로 옆으로 휙휙 피했다. 앞을 보고 가만히 있으라고 소리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피하는 것이라 아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첫날은 1시간 만에, 이튿날은 2시간 만에 렌즈 끼기에 겨우 성공했다. 셋째 날은 3시간이 넘어가도 결국 렌즈를 넣지 못했다. 8살 아이에게 앞을 보라고 눈을 뜨라고 소리만 지르다가 끝이 났다. 아이는 무서웠을 거다. 렌즈를 잘 끼면 눈이 더 나빠지지 않을 거라는 회유와 지금 못 끼면 눈이 나빠져서 몹시 불편해질 거라는 협박이 반복되었다.

  앞을 보고 눈을 크게 떠. 눈 감지 말라니까. 또 눈 감았잖아. 눈 나빠지면 어떡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눈을 질끈 감고 뜨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에 소리만 불같이 질렀다. 울이가 자기도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거라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나도 같이 울고 싶었다. 결국 렌즈 착용을 중단했다.

  눈을 뜨고 앞을 보고 있으면 돼. 왜 그게 안 돼?

  엄마가 혼낼 때마다 몇 번이고 우느라 눈이 퉁퉁 부은 아이가 보였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않고 눈을 뜨고 앞을 보라고 무섭게 소리 지르는 나 자신이 먼지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알쏭달쏭 캐치티니핑>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빙글핑과 꾸래핑이 다투는 이야기가 나온다. 빙글핑은 민트색 머리를 휘날리며 우아하게 얼음 위에서 춤을 추는 피겨스케이팅 티니핑이다. 함께 할 친구를 찾던 빙글핑이 꾸래핑에게 같이 하자는 제안을 했고, 꾸래핑은 부단히 연습을 한다. 노력한 결과를 보여주는 꾸래핑에게 빙글핑은 칭찬과 응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게 아니라고 언성을 높였다.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그게 안 돼?'라고 물었다. 아주 쉬운 건데도 부족함을 보이는 것에 대한 힐난이 담겨 있었다. 최선을 다해 연습했던 꾸래핑은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고 더 이상 연습하지 않겠다고 소리 질렀다. 나와 아이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빙글핑이 친구의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해 나쁘다고 말했었다.

  



  어머니, 아이가 협조해주지 않으면 렌즈가 깨질 수도 있고, 아이도 아플 수 있어요. 집에서 더 연습하고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도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기에 더 이상 욕심을 부리며 더해보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울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치맛자락만 만지작거렸다.

  울이도 수고했어. 하고 싶은데 잘 안 돼서 너도 속상하겠다.

  답답하고 화가 나고 속상했지만 시무룩한 아이에게 수고했다고 말했다. 아이도 속상한지 눈물을 닦았다. 엄마가 혼낼까 봐 무서웠던 것 같다. 사실 너무 아쉬웠다. 눈을 크게 뜨기만 하면 선생님과 엄마가 다 해줄 일인데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눈을 못 뜨는 건지. 앞을 보고 눈만 뜨고 있으면 되는 건데. 답답하고 실망스러워서 속이 부글거렸다. 지금이라도 렌즈를 해서 시력이 떨어지는 걸 막아야 할 텐데. 안과가 먼 데다 대기도 길어서 여기 오는 것도 힘든 일인데. 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오른쪽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해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저녁 내내 속상하고 화가 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맑게 웃으며 동생이랑 장난치는 아이를 보니 미워 보이기까지 했다. 뭘 잘했다고 웃어, 지금 웃음이 나오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8살 아이에게 다음에 더 잘해보겠다는 반성의 말이라도 듣고 싶었던 걸까. 스멀스멀 올라오는 내 옹졸함에 또 한 번 실망했다.


  이틀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두통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오후에 걷고 또 걸었다. 흙길을 밟고 나뭇잎이 떨어진 메마른 나무를 바라보고 길가에 무심하게 떨어진 솔방울도 헤아렸다. 아프도록 차가운 겨울바람에 머리가 시원해졌다. 무거웠던 마음도 조금씩 비워졌다.

  안과 선생님의 말을 곱씹었다. 아이와 더 연습해 보세요. 그게 부족했다. 아이 마음을 헤아리고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 좋은 걸 물려주지 못한 내 탓이라고 자책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늘어놓는다고 해결되는 건 없다. 불안함에 저만치 앞서가는 내 마음부터 잡아야겠다. 부산하던 마음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간다. 하교 시간 아이를 데리러 가는 발걸음이 아주 조금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울이의 소원



상단 이미지: 알쏭달쏭 캐치티니핑

하단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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