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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18. 2023

만들기 작품을 대하는 엄마의 자세

  순둥이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기세였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 머리는 하얗고 진한 핑크색 드레스 입은 종이 인형이 없어. 엄마가 찾아줘.”


  10분 후면 유치원 버스가 올 시간이었다. 이제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순둥이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여기저기 찾아도 보이지 않자, 나를 샐쭉하게 쳐다보며 “엄마가 버렸지?” 의심하기까지 했다. 해명을 하고 억울함을 풀고 싶지만, 그러다가는 유치원 버스를 놓칠 것 같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울먹이는 아이를 달래서 겨우 밖으로 나갔다.      




  우리 집에는 종이 인형이 아주 많다. 육아서를 열심히 읽었던 게 잘못이었을까. ‘창의력을 길러주려면 기성품 장난감을 안 사줘야 한다’, ‘플라스틱은 몸에 해롭다’는 글을 읽고는, 장난감을 잘 사주지 않았다. 까칠이와 순둥이는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예쁜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색칠북과 스티커는 달랐다. 약국에 갈 때면 감기약과 색칠북은 한 세트나 마찬가지였다. 가격이 감기약의 2, 3배씩 해서 약국에 갈 때마다 사줄 수도 없었다. 색칠북을 안 사고 약국을 그냥 나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칠북


  색칠북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색칠해서 가위로 오려내면 인형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골라 색연필로 꼼꼼히 색칠한 후 열심히 오렸다. 아이 둘이 매일 종이 인형을 만들어내니 집안 곳곳에 종이 조각들이 돌아다녔다. 매트 위 수북하게 쌓인 종이 조각들과 곳곳에 널브러진 것들을 하나하나 주워서 정리하려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약국에서 색칠북을 왜 파는 건지, 이걸 안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청소하다가 무심코 종이를 한 움큼 잡아서 버린 적이 있는데, 엄마를 어찌나 쏘아보고 울던지,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이후로는 마음대로 버리지 않았지만, 뭔가가 없어지면 아이들은 엄마를 의심했다.

  “엄마가 다 버렸지?”

  “아니야, 잘 찾아봐. 그러게, 정리 좀 잘하라고 했잖아.”

  “내 건데 버리면 어떡해! 엄마, 무한 배 미워!” (‘무한’이 끝없는 숫자라는 걸 알게 된 후, 싫다는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9월부터 까칠이는 새로운 방과후수업을 신청했다. 수요일마다 방과후시간에 만들기를 해 온다. 작품의 부피가 작지 않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정리함에 넣어두었다. 일주일마다 한 두 개씩 가져오니 정리함에 넣을 자리가 점점 부족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슬쩍 버리고 싶지만, 나중에 찾을 게 뻔해 그러지도 못했다. 사진으로 남겨두고 버려도 될까. 분명 까칠이는 안 된다고 할 거다.     


까칠이가 만든 방과후수업 작품


  가을이 끝나감을 알리듯 찬 바람이 코 끝에 시리게 닿던 11월의 어느 날, 까칠이의 방과후수업을 참관하러 갔다. 그동안 어떻게 만들기를 했는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맨 앞자리에 앉은 아이는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빨대처럼 생긴 프레임을 연결하고 있었다. 2, 3, 5, 6cm 길이도 다르고 연결고리 종류도 다양했다. 어른이 하기에도 은근히 어려워 보였다. 작은 손으로 힘을 줘가며 구부리고 끼우다가 막히면 손을 들고 질문도 했다. 이렇게 열심히 만들어서 집에 가져왔던 거구나. 아이에게는 정성을 다한 귀한 작품인데, 엄마는 그저 치우고 정리해야 할 귀찮은 것으로만 봤다는 생각에 마음이 저릿해졌다.




  아이가 무엇인가를 만들어오면 겉으로는 감탄을 하며 칭찬을 해주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고민했었다. 집안에 쌓여 지저분해지는 것만 생각했던 나였다. 아이들의 작품이 어른이 보기에는 작고 유치하고 별 것 아닌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만든 종이 인형은 단순한 종이 조각이 아니었다. 방과후수업 작품 또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아니었다. 그저 치워야 할 것으로 생각했던 작품들에 아이의 마음과 정성, 노력이 가득 담겨 있었다는 것을 깨닫자 나 자신이 부끄럽고 아쉽게 느껴졌다.


  집에 쌓여가는 종이 인형과 작품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여전히 고민스럽다. 계속 쌓아둘 수는 없는 거니까. 다만, 아이의 노력을 인정해 주고 알아봐 주는 엄마가 곁에 있으면, 아이가 뿌듯하고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내 그림과 작품이 누군가에게 소중히 여겨졌다면 어땠을까,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꽉 차오르는 것 같다. 까칠이와 순둥이에게 그런 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진다.


 "존중은 사람을 더 크게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힘입니다." - 토머스 파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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