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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16. 2023

언니는 강하다

자매, 수시로 싸우지만 둘도 없는 친한 사이

  “엄마, 순둥이가 나한테 ‘너’라고 했어.”

  “아니야, 언니라고 했어!”

  잠잠하다 했더니 또 시작이다. 오늘만 몇 번째인지. 다툼 끝에 누군가는 결국 울었다. 사사건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까칠이는 언니 대신 ‘너’라고 부르는 말을 싫어했다. (정작 순둥이에게 ‘야’라고 한 번씩 부르는지도 모르고.) 많은 인형 중에서 꼭 같은 인형을 가지고 놀겠다고 싸웠고, 간식 시간이면 과자를 상대방보다 한 개라도 더 먹어야 했다. 게임을 할 때도 꼭 이겨야 했다. 같은 옷이나 장난감, 숟가락과 포크, 서로 싸울 수 있는 핑계는 많았다. 밖에서는 친구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기만 하던데. 서로에게 조금만 더 부드러우면 좋으련만, 사이좋게 놀다가도 불꽃이 파바박 튀는 건 순식간이다.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3살 순둥이와 5살 까칠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간 적이 있다. 순둥이는 미끄럼틀을 타려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아이들이 잘 노는 것을 확인하고 의자에 멍하게 앉아 있을 때였다. 갑자기 까칠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바닥에 넘어진 채 큰소리로 울고 있었다.

  “까칠아, 왜 울고 있어? 무슨 일이야?”

  “저 오빠가, 오빠가, 나를 밀었어!”



  까칠이가 8, 9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속에서 천불이 났다. 당장이라도 다가가서 왜 그랬냐고 큰 소리로 혼내고 싶었다. 아이의 엄마도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이와 엄마들 사이에 줄이 팽팽히 당겨진 듯 긴장감이 돌았다.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나지만, 이 순간에는 확인할 것은 해야 했다. 남자아이에게 감정을 누른 채 물었다.

  “너 이 아이 민 거 맞니?”

  “아닌데요.” 

  아이가 아니라고 하자, 순간 난감해졌다. 우리 애는 울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까칠이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맞잖아. 오빠가 순둥이 앞에서 막고 있어서 하지 말라고 했더니, 오빠가 나 밀었잖아!”

  아이의 엄마가 다시 물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아이가 밀었다는 것을 의외로 순순히 인정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해.”

  “미안해.”

  늘어질 것 같았던 대화는 의외로 간단하게 종료되었다. 아이와 그 엄마는 뒤를 돌아서 곧장 놀이터에서 나가버렸다. 그 아이가 까칠이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기 바랐다. 넘어져서 아프고 억울한 마음을 충분히 달래줄 수 있을 만큼. 사과는 짧고 건조했다. 아쉬웠지만 이렇게 상황이 끝난 것에 만족해야 했다.     

 

  까칠이는 언니답게 동생을 지켜줬다. 

  순둥이가 미끄럼틀을 타려고 하는데 남자애가 앞을 막았고, 마음이 여려 비키라는 말도 못 하고 어쩔 줄 몰라 당황했을 거다. 까칠이가 그 모습을 보고 동생을 도와주려고 그만하라고 말했나 보다. 남자애는 조그만 여자애의 말에 욱했을 거고 그래서 밀었을 터였다. 까칠이는 힘에 밀려 넘어졌고 서러워서 울었던 것 같다. 상황을 떠올리자 슬며시 웃음이 났다. 까칠이가 동생을 챙겨줄 만큼 벌써 이렇게 컸구나. 집에서는 싸우기가 일쑤더니 밖에서는 하나뿐인 동생이었나 보다. 덩치가 커서 무서웠을 텐데 용기 있게 동생을 도와주는 까칠이가 대견했다. 까칠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엉덩이를 털고 다시 동생과 뛰어다니며 놀았다.




  오늘도 싸우고 내일도 싸우며 아이들은 자랄 것이다. 어떤 날은 '너희끼리 해결해. 엄마도 피곤해. 그냥 좀 양보하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는 없어?' 귀찮고 피곤한 마음에 다툼을 모른 척하기도 한다. 씩씩거리고 화를 냈다가도 심심해진 언니 혹은 동생 누군가가 먼저 놀이를 청하면 언제 싸웠냐는 듯 신나게 논다. 

  

  “집구석이 망할라고 조용할 날이 없구만!” 

  아주 어릴 때 아빠가 했던 말이 생각날 때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하루에 몇 번이고 동생과 싸워대고는 했다. 그런 우리를 보고 아빠가 화를 참고 참다가 내뱉은 말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사소하고 별 것 아닌 것들로 많이 싸웠는지. 나이가 들어서일까. 언제부턴가 동생과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친구 같은 자매가 되었다. 핫딜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한 걸 무심하게 택배로 보내주고, 중요한 일을 같이 의논한다. 까칠이와 순둥이도 서로를 챙기는 애틋한 사이가 되겠지? 그때를 상상하며, 오늘 싸운 건 엄마가 눈감아 줄게.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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