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어른병'
대학을 졸업하고 교단에 처음 섰을 때, 내 나이 스물 넷이었다. 한 번의 휴학도 없이 스트레이트로 학부를 졸업하고, 졸업한 그 해에 남고에서 교사로서 아이들과 처음 마주했던 그때의 나는 말하자면, '어른병'에 걸려 있었다. 캐주얼한 복장은 절대 입지 않았고, 커리어우먼스러운 자켓과 정장 바지를 입고 출근을 했다. 목에 힘을 빡 주고 교실과 복도를 걸어 다녔고, 안 그래도 허스키한 내 목소리를 더 걸걸하게 내면서, 주변 남자쌤들이 말끝마다 붙이는 '야 이 시키들아'를 나도 달고 살았다. 혹여나 열여덟 살의 남자아이들 눈에 내가 만만한 여선생으로 보일까 봐 걱정스러웠던 탓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하면 내가 어른으로 보일 줄 알았다. 아이들보다 고작 여섯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 알량한 겉모습으로라도 어른 흉내를 내고 싶었던 것이다. 고등학생들과 비교해서 내가 어른인 양 내세울 수 있는 경험은 대학에서의 학부 생활과 몇 번의 연애, 동아리 활동, 배낭여행 정도였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런 얕은 경험으로는 존경받을 만한 선생의 모습을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어른으로서의 지혜와 삶의 여유를 가르쳐주고 싶었지만, 사실상 인생이 뭔지도 잘 몰랐던 나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물네 살의 나는 나이만 먹은 고등학생에 불과했던 것 같다. 대학시절 내내 부모님께 등록금과 용돈을 모두 지원받으며 본가에서 4년을 꼬박 살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본가에서 살면서 부모님이 정해놓으신 통금시간에 맞추어 귀가하던 나를 과연 어른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내 힘으로 나 하나를 건사할 만큼의 완전한 독립체도 아니었고, 온실 속 잡초였을 뿐이었다. 그런 내가 아이들 앞에서 선생(先生)이랍시고 무게 잡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기억이 그래서인지 아직도 참 부끄럽다.
어느 날엔가는, 5교시 수업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이들을 수업에 집중시켜 보려 애를 쓰다가 실패하고는 칠판에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휘갈겨 써놓고 한참을 으름장을 놓은 적도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얼마나 생각대로 산다고 그런 말을 했던 걸까. 생각대로 살든, 사는 대로 생각하든,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걸 알지 못했던 내가 그 말을 뱉으며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겠답시고 낑낑거렸던 것이 이제와 우습다. 그렇게나 어리고 어설펐던 나를 아이들이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고, 나는 서른넷이 되었다. 이제는 학교 교실이 아닌 학원 강의실에서 아이들을 매일 마주하며 지낸다. 장소가 바뀌었고 시간이 흘렀지만 그놈의 '어른병'은 아직도 고쳐지지가 않은 듯하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 앞에서 어른인 척을 하고 있다. 여전히 캐주얼한 옷은 입지 않고, '야 이 시키들아'를 달고 지낸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스물네 살에는 어른으로 보이고 싶은 내 모습만 신경 썼던 반면에, 지금은 내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한 명씩 눈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내 표정과 말투, 눈빛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정작 수업에서 제일 신경 써야 할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는 걸 이제와 돌아보니 알겠다. 한참 입시로 불안하고, 크느라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에게 일일이 눈 맞춰주지 않고 내가 어떻게 보일지만 생각했던 게 이제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놈의 '어른병'은 언제쯤 고쳐져서 아이들 앞에서 굳이 어른인 척을 하지 않고도 진짜 어른으로 자신 있게 설 수 있을까. 영어강사가 영어만 잘 가르치면 그만일 텐데, 나는 또 사서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