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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날 현 Dec 26. 2023

이 길의 끝에서

하루 시 한 편, 여섯째 날



얼만큼 걸어왔는지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그저 앞으로 앞으로 걷기만 한다

길이 갈라지고
하늘이 검붉게 변하고서야
눈이 밝아진다

그제야 노을빛에 익은 낙엽에 초점을 맞추

문득 엄마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내 걸음을 멈춘다

나쁜 지지배 너는 꼭 해질 때만 엄마생각하드라

한낮의 번잡함은 나 하나만 보게 하고
저녁의 노을만이 엄마를 내 마음에 둥실 띄우는 걸 어쩌랴

하루동안 이만큼이나 걸어왔다고
해맑게 자랑을 늘어놓고 싶은데

엄마는 분명
옷은 따시게 입고 걸었는지 누가 힘들게 하진 않았는지 내일은 얼마나 걸을 건지 어디로 향할 건지 언제까지 걷기만 할 건지

질문을 가장한 끝도 없는 걱정으로
잠시 아련했던 내 마음을 지워내겠지

이렇게 걷다가 걷다가 이 길의 끝에서
내가 엄마의 엄마로
엄마가 나의 딸로
우리가 그렇게 다시 만난다면
그땐 헤아릴 수 있을까
그땐 해질녘이 아니고도 그녀를 생각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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