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다 이룬 우리의 꿈에게

혹은 아직 어린 나에게

by 심해연

1.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것처럼 살아라


우연히 접한 말이다. 아마 살아있는 동안 이루지 못할것만 같은 꿈을 세우고, 오늘이 그 꿈을 실현 시킬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혼신을 다하라는 뜻일거다. 이루지 못한다면 왜 꿈을 꾸고 이루었을때의 행복감을 위해 처절히 패배하곤 허황됨을 느끼는것일까, 우리는 드높은 가치를 추구해야되는 존재이기에 그런걸까, 아님 그저 멍청하기에 그런걸까. 난 이렇게 생각한다, 가슴으로 느껴지는 쓴 맛을 통해 독기를 다진다고. 그러나 그 맛의 농도는 내가 세운 목표의 크기에 비례한다. 내 꿈이 허황된다면 그에 맞게 패배감도 클것이다. 그러나, 꿈이 크고, 패배감이 클수록 그로 인해 독기를 품어 성공 확률이라는 것이 높아질수 있는것이다. 그럼에도, 진정한 성공은 없다. 우리는 가질수록 더 많이 원하니까. 믿기지도 않고 경험해본일도 아니지만 부자들은 더 큰 부를 원한다. 부자들도 끊임없이 갈구하고 노력하는데 나는 지금 무얼 하는가, 그래서 한낱 평범한 나는 영원히 살것처럼 큰 꿈을 안고, 그 꿈을 위해 죽을듯이 노력해야만 한다.

한번만 더 생각해보자. 얼마나 아름다운가, 꿈이라는 단어가. 잠결에 빠져드는 나의 세상과, 찬란한 미래, 현실이 아닌 헛된 상상, 이 서로 다른 단어들을 하나로 묶을때 사용된다. 어떻게 찬란한 미래와 헛된 상상이 하나의 단어가 될수 있었을까? 찬란함이라는것이 헛된 상상이라 그런걸까, 아님 헛된 상상마저도 찬란하다고 볼수 있기 때문일까.

꿈의 범위를 넓혀 보자. 내가 지금 독자에게 꿈하면 떠오르는것? 이란 쉬운 질문을 한다면 잠에 빠져들때 꾸는 미학적인 꿈과, 미래를 그리는 꿈으로 나뉠것이다. 그러나 왜 꿈을 꿔? 라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 할것인가. 잠을 자니까? 미래를 생각해야되니까? 다 내가 생각한 답변은 아니다. 꿈은 삶이고 삶이 꿈이다. 살면서 겪는 풍파가 악몽이고, 내 소원은 숙원이고 찬란한 미래는 희망이다. 이 모든것은 길몽이다. 우리는 살아감으로서 꿈을 꾸고 불나방처럼 상처 받을거란걸 알면서도 그 꿈을 쫒는다. 멍청하다고? 전혀. 아무것도 쫒지 않는 무미건조한 사람보단 죽을걸 알면서도, 아파할걸 알면서도 뛰어드는 사람이 깨어있다. 그렇지 않다면 평생 번대기로서 살아가는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삶이 무미건조하다면 남이 나에게 씌운 허물을 찢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할지도 모른다 그런 삶이 청아하고, 눈부시니까. 사실 우리는 이루지 못할 꿈을 추구해야한다. 그래야만 살아갈 이유가 생기고 내일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생기니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멋도 모르게 내 꿈에 가치를 정하는 사람이 있다. 단지 남들의 보편적인 가치에서 몇센티 벗어났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작 내 꿈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는데. 나에게는 많은 꿈이 있었다. 작가, 화가, 음악가, 요리사, 모두 과거형이다. 난 결과물을 만들어 자신에게 증명하는 일이 좋다. 현실적인 벽은 나도 안다. 모두가 꿈을 꾸고 이루었다면 모두가 행복했을테니까. 지금 당장 거리에만 가도 슬픔에 잠식되어있는 사람을 볼수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조금만 관찰하면 보이는 일이다. 억지 웃음과 거짓인 밝은 성격은 나에겐 다 보인다. 이건 특별한 능력이나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다는게 아니다. 지나치게 주위가 산만하고 다른데에 정신을 잘판다는 소리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내 꿈은 뭐 위해 있는걸까, 정말 내가 싫어하는 허울 뿐인 꿈에 불과할까. 사실은 우스웠다. 나는 남들과 다를거라고 생각한 자신이. 남들 다 거짓된 꿈을 꾸고 있을때 나는 달랐다고, 나만은 예외일거라고 생각한 나 자신이 부끄럽다. 그렇다, 난 남들과 같기에, 정말로 특별한것 하나 없기에 노력해야 한다. 죽을 의지로 내 꿈을 위해. 또 한가지 생각이 더 들었다. 요즘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아마 스스로 생각하던 사회에 대한 이상이 환상이나 거짓으로 변했기 때문이겠지. 이런 세상에서 완벽하게 적응을 하려고 노력하고 누군가 이끌어주는대로 수동적인 삶을 사느 것도, 수동적인것이 내 자아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상처 받은 나비들이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한때 아픔을 자각한체 불 속에 뛰어드는 주체적인 사람이었다고, 혹여나 실패했더라도 누군가가 선물할수 없는 드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영원이란건 없지만 우린 영원을 믿듣이, 영원한 꿈도 믿어보는게 어떨까.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