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98평

나에게 허락된 공간

by 익군

불을 끄고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것은 나만의 새해를 맞는 의식이다. 정신을 차렸을 땐 2015년도 이미 10시간 이상 지나있었다. 방안 가득한 냉기에 이불 밖으로 몸을 꺼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눈을 깜빡였다. 차가운 벽에 등을 대고 누우니 현관문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보였다. 새해가 밝아도 나에게 온전히 허락된 공간은 3.98평. 4평이 채 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거의 2년 전인 2013년 3월이었다. 졸업과 함께 기숙사에서 나오게 되어 급하게 방을 구했었다. 수습사원 월급을 차곡차곡 모은 300만 원 남짓이 당시 내가 마련할 수 있는 전부였다. 보증금에 월세를 선불로 내고 나면 당장 생활비가 없어 처음 20일은 일할 계산하여 살아야 했다. 1년이 지나고 재계약할 무렵 나의 사정을 들은 친구가 얼마간의 돈을 빌려주어 간신히 보증금 1,000만 원이라는 상징적인 액수를 맞췄을 뿐, 2년째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주인아저씨는 약 5평은 될 거라고 했다. 물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다만, 세입자가 된다는 것에서 오는 위축이 이곳에 나를 욱여넣게 했다. 방을 알아볼 때마다 나의 주머니 사정을 구구절절이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는 것도 힘들었다. 누구도 나를 업신여기진 않았다. 스스로 위축되지만 않으면 된다는 걸 잘 알았지만, 의식적으로 힘을 내야 한다는 것이 못 견디게 싫었다. 그래서 나의 사정을 듣고도 그저 알았다고 말하는 주인아저씨가 내미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더랬다.

진짜 나의 생활 공간이 몇 평쯤 될까 궁금해 줄자를 꺼내 든 적이 있다. 주방과 방의 구분이 모호했지만, 대충 방의 크기를 가늠해봤다. 2평이 채 되지 않는 공간. 공중전화 박스가 약 0.5평쯤 된다니, 내가 몸 누일 공간은 공중전화 박스 4개를 이어 붙였다고 보면 될까. 그때도 그저 헛웃음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중전화 4박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2년 동안 이룩한 공간이 딱 이만큼이었다. 그나마도 빌린 돈으로 빌린 공간.


새해 벽두부터 올해는 이사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새로운 공간을 상상해보았다. 새로운 공간은 겨울이 되어도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평이 채 안 되는 공간. 그나마 화장실을 제하고 나면 3평도 안 되는 이 공간을 데우기가 쉽지 않았다. 보일러실은 너무 멀었고, 벽은 늘 손댈 수 없이 차가웠다. 보일러를 틀어도 바닥을 조금만 벗어나면 찬 공기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곳에 살면서 예전이면 생각도 못 해봤을 바람도 하나 생겼다. 신발장이 있는 (혹은 들어가는)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 운동화 한 켤레를 사면 몇 년을 신었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한두 종류의 신발로 일 년을 살았다. 취업했다고 갑자기 신발을 사들인 것은 아니었다. 2평짜리 방에 여름, 겨울옷을 욱여넣고도 누울 공간은 마련할 수 있었지만, 3켤레쯤 벗어두면 가득 차버리는 현관은 어찌할 수 없었다. 대형 마트에서 싸구려 3단 신발장을 샀지만, 더 좁아진 현관을 보면서 늘 신발장을 꿈꿨다.

1구밖에 없는 인덕션. 도마 놓을 공간도 마땅찮은 싱크대. 전기밥솥 하나 놓을 공간도 없는 주방. 아쉬운 것투성이였다. 그나마 남쪽과 서쪽으로 향한 두 개의 커다란 창을 통해 보이는 해 질 녘 풍경이 이곳에서의 삶을 버티게 해 주었는데, 길 하나 건너 지어지는 아파트가 완성되면 그마저도 잃게 될 것이 분명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블라인드를 걷고 창밖을 바라봤다. 그다지 멋진 풍경도 아니었다. 해가 떨어지는 시간만 피한다면 방을 비우는 게 어렵진 않을 것 같았다.


잠시 서 있으니 새삼 새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운한 새해 아침을 위해 (이미 정오에 가까울 시각이지만) 한 발 거리에 있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모든 공간이 크게 한 발을 디디면 닿을 수 있는 공간. 올해는 이곳을 벗어나야겠다 생각하며 따뜻한 물줄기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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