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 세대,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뜬다고 나의 연애 상태가 갑자기 변하진 않았다. 새해가 밝아서도, 그 새해가 다시 한 번 저물어 가고 있는 이 시점에도 나의 연애 상태는 여전히 '싱글'이다. 작년에는 이십 대의 '싱글'이었는데, 올해는 삼십 대의 '싱글'이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덕분에 '삼십 대의 남자가 연애하기 힘든 이유' 따위의 글을 보며 위안을 받고, '삼포 세대'라는 말에 자조적인 웃음을 짓기도 했다. 나라서 혼자인 것이 아니라, 결혼 적령기라는 것에 접어드는 30대 남자가 연애하기 힘들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사람을 발견하자 생각은 바뀌었다. 내가 누군가를 그리는 마음은 20대 때의 그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세상에 재밌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연애가 아니라도 하루를 가득 채울 순 있었지만, 그것이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대신하진 못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나간 연애에 상처를 입어 섣불리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지 않는다는 말도 겁쟁이들의 변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20대 때에도 그런 변명을 하며 사랑에 빠져드는 자신을 붙잡았을 것이다(성공적이었을진 모르겠지만). 결국, 며칠 밤을 더 자고, 몇 끼를 더 먹는다고 해서, '30대의 사랑' 따위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만의 사랑을 할 뿐. (여담이지만, 나의 사랑이란 '멀리서 그리는 마음'인 것 같다. 그 누군가를 발견했음에도 여전히 혼자만의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삼포 세대'였지만,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었다. 입에 감기는 그 어휘에, 그 자조적인 울림에 나 자신을 맞춰보려 했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 겁났고, 사랑에 빠지는 자신을 붙잡는 겁쟁이처럼, 희망에 빠지는 나를 붙잡았을 뿐이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들은 돌아가며 청첩장을 건넸고, 자식 자랑을 하는 친구도 생겼다. 술자리에 앉으면 지난 10년의 시간에 못지않게 사랑 타령을 늘어놓았다.
텔레비전, 인터넷에서는 연일 위협적인 통계치를 들이민다. 출산율이 어떻고, 인구구조가 어떻고. 미디어에서 제시하는 결혼 비용, 육아 비용은 한 달 월급을 빠듯하게 쓰는 직장인에겐 '억'소리 나는 수치일 뿐이다. (숫자를 읽어봐도 '억'이고, 다 읽고 나도 '억'이다. 또는 '헉'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주변에선 그 '억'소리 없이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쉬이 볼 수 있다. 아파트가 아니어도 부지런히 꾸며 자리를 잡는 신혼부부들이 있고, 그들이 애지중지 키우는 아이들이 있다. 물론, 팍팍해서 둘째를 엄두도 못 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결혼을 미루는 커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포 세대'라는 자조 속에 다들 포기하니 나도 포기해버려야지 라는 생각이 쉽게 들까봐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은 누구도,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삼포 세대'란 단어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로 읽고 싶은 건 나 하나만이 아닐 것이다.
억지로 레이스에 끌려 나와 몸이 풀리지도 않은 채 '싱글'이란 바통을 넘겨받았다. 조금만 달리면 될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이 바통을 움켜쥐고 내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래도 시작에 비해 뛸만하다. 삼십 대의 바통이라 더 무겁다는 것도 거짓이었고, 삼포 세대의 바통이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무거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거짓이었다. 그저 희망을 품고 고독을 즐기던 20대 때의 달리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힘이 난다. 이 레이스가 빨리 좀 끝났으면 하는 마음도 그때와 같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