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왔다는 첫 남자 손님은 처음 카페가 문을 열었을 때 자주 오던 손님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회사를 나와서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중이었는데, 상대적으로 집세가 싼 골목 안쪽으로 이사를 왔다가 카페를 발견하고는 단골로 한동안 카페에 살다시피 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몇 번의 해커톤에서 만난 사람들과 의기투합하여 사무실을 얻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카페에는 방문하는 빈도수가 낮아졌다는 것이었다.
거의 매일 같이 카페를 방문하는 여자와 남자는 시기에 차이가 있긴 했지만 꽤 최근 들어서 저녁시간에 카페를 방문하곤 했는데, 여자는 바닐라 라떼를, 남자는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신다고 했다. 여자도 남자도 각자 읽을거리를 들고 와서 짧게는 30분에서 길면 2시간 넘어까지 앉아 있다 가곤 했는데, 아직 사장도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진 못했다고 했다.
커플과 또 다른 남자는 서로도 약간의 안면이 있는 듯했다. 뒤늦게 온 남자가 자신의 음료를 주문해 들고 자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빙 둘러보다 구석에 앉은 그들을 발견하고 멀리서 손짓을 하였다. 커플이 인사를 꾸벅하는 것으로 봐선 남자가 조금 더 연장자였던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기껏 해봐야 한두 살 차이가 남직해 보였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도 그들은 한 자리에 앉지 않았다. 커플은 구석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펼쳐놓고 열심히 이야기를 이어갔고, 뒤늦게 온 남자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어 화면과 창 밖을 번갈아 보며 무엇인가 작업을 진행하는 것 같았다.
그들을 관찰하는 동안 오랜만에 왔다는 손님과 수다를 떨다 돌아온 사장은 그들이 희은의 학교 지인들이라 했다. 희은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자주 놀러 오던 친구들인데, 그녀가 그만둔 뒤에도 종종 카페를 찾는다고 했다. 같은 동아리 소속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꽤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라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 말고도 몇몇 손님들이 더 오갔지만 사장의 눈에 익을 정도로 자주 오던 사람들은 아닌 듯했다. 재밌는 것은 희은이 이야기했던 데로 사장이 주문을 받으면 항상 손님의 이름을 물어봤다. 내가 뒤에서 물끄러미 그런 그를 지켜보는 걸 눈치챘는지 손님의 이름을 불러 준비한 음료를 내어 준 뒤 나를 돌아보며 한 마디를 흥얼거리듯이 읊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지갑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친구가 되었다~.”
내가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짓자 그가 덧붙였다.
“희은 씨가 이미 얘기했어요?”
“네, 낮에 말해줬어요.”
“아 참. 이거 내 멘튼데. 희은 씨는 뭐라고 설명하던가요?”
“방금 하신 거랑 똑같이요. 카페 전통? 이라고도 하더라고요.”
“그렇죠. 전통! 목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소위 말하는 물장사하려고 시작한 카페가 아니었거든요, 여긴. 뭐 모든 손님이 내 맘과 같을 순 없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친구네 가게에 놀러 가는 느낌이 들었으면 했어요. 나도 친구가 놀러 오는 느낌이었으면 했고요. 처음엔 다들 어색해하는데, 이게 좋아서 다시 오는 사람도 있고 하니까. 암튼, 좀 어색하더라도 부탁해요.”
“네.”
사장은 10시 반부터 대략적으로 마무리 정리를 하는 법들을 알려줬다. 테이블들을 닦고 제 자리를 맞추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 등을 대충 마치고 나니 시계 바늘이 11시를 막 지나려고 하고 있었다.
“단골들은 대충 10시 반이면 자리를 뜨는데, 처음 오는 분들은 안 그렇거든요. 정중하게 11시에 마감을 해야 해서 미리 정리를 시작한다고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슬슬 자리를 정리해주세요. 가능하면, 사람들이 나가기 전까지는 앉아있는 자리 주변은 두고 구석이나 먼 곳부터 자리를 정리하면 크게 늦지 않고 마감할 수 있을 거예요. 정 안되면 화장실 청소를 먼저 해도 되고요. 11시 전에 마감을 끝내면 얼마든지 더 빨리 가도 돼요. 시급은 11시까지 정산되니까 걱정 말고요. 첫날인데 어땠어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낮에는 희은 씨가 대부분 다하고, 또 저녁엔 사장님께서 직접 하셔서.”
“하하, 뭐 일이란 게 그렇죠. 천천히 배워가면 될 거예요. 집에는 어떻게 가요?”
“역 근처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서 그거 타려고요.”
“그렇구나. 난 집이 이 위쪽이라, 오늘 하루 수고 많았어요. 조심해서 들어가요.”
“네, 안녕히 계세요.”
터벅터벅 골목길을 내려가는데 그제야 다리가 아파오며 온종일 일을 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새삼 일이란 걸 참 오랜만에 해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서 부지런히 갈고닦은 잡무 능력을 복학한 뒤 과 주점에서 여과 없이 발휘한 것이 기억에 남는 마지막 일이었다. 그 이후로는 과제, 공부, 무슨무슨 준비 등으로 이름 지워진 것들에 시간을 쏟았다. 학생으로 부지런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을 생산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 아리송했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뺨을 스치는 찬 공기가 되려 신선한 공기처럼 느껴졌다. 비록 이번이 첫 아르바이트였지만, 썩 괜찮은 곳에 자리를 구한 것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