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글
정제되지 않은 글입니다. 많이 두서없고 정신없습니다.
박이 며칠 기침을 한다고 했다. 아프리카 수단 온도가 40도는 기본이라던데 무슨 기침이야 하고 설마 했는데 양성이라고 연락이 왔다. 코로나라고. 허 참. 박이 상담비를 내주기로 한 상담 일정을 취소하려 했다. 아픈 놈 돈으로 상담이나 갈 팔자가 어딨어. 그리고 박이 걱정됐다. 그는 취소는 뭔 취소냐고 계좌에 상담비를 입금했다.
상담이 처음이 아님에도 막상 가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문제는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문제는 또다른 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어떤 문제는 또 다른 무언가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으니.
난 엉망진창이다.
왜소하고 작은 몸 때문에 생겼던 일들 때문에 피해망상이 있어요, 사람들이 날 좋아하면 좋겠는데 내가 좋아하는 만큼 상대가 날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걱정이에요. 어떤 때는 말을 너무 많이 쏟아내서 괜히 마음에 걸리고 어떤 날은 입에 지퍼를 잠가 버린 수준이라 머리가 아파요. 우울이 심한데 제 기질에서 이만큼, 안 좋았던 경험에서 이만큼,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 벗어날 수 없었던 때의 환경 이런 걸로 우울이 생겼어요. 나이를 먹어 벗어날 수 있을 기회와 시간이 있지만, 날려 버렸고, 죄책감과 무력감이 항상 짙어요. 20년 된 실수가 아직도 뚜렷해요, 내가 하는 일이 모두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뭐 기타여타 등등등등.
이걸 적어서 가야하나. 병원에 갈 땐 의사가 원할 법한 말을 적어 간다. 그는 내게 일어나는 신체적 증상은 주의깊게 듣는다. 첫 날을 제외하고는 개인적인 질문은 일절 없다. 나는 적어 간 증상을 까먹기 전에 읽어 준다. 잠이 안 와요. 잠에 들고 나면 깨어나기가 너무 힘들어요. 헛구역질이 심해요. 체중이 2kg 빠졌어요.
저번주엔 내가 좀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이번주엔 부친께서 술을 마시고 심하게 패악을 부렸어요라고 말을 덧붙여 봤는데 역시 그는 프로다. 약을 바꿔 보자. 다음주에 보세. 외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2분 이상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약값은 6000원. 15만원 짜리 상담엔 뭔가 자세히 적어서 가야 할 것 같다. 아무리 편한 소파가 준비되어있다한들 내 머리는 회기당 15만원이면 지금 분당..초당 얼마...라는 계산을 멈추지 못할 것 같다.
돈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먹고 쓰질 않는데 왜 돈이 없는지 모르겠다.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정말 모르겠다. 죽도록 싫지만 부모님 집에서 살고 핸드폰 요금은 가장 싼 거, 하루에 쓰는 돈은 일 나가고 들어오고 하는 버스비 2500원에 생수 한 병 600원 해서 딱 3100원 쓰는데 왜 통장엔 7000원밖에 없고 다음주엔 교통대금과 보험비가 나가는지. 나갈 돈이란 걸 알고 일단 벌면 메꿔질 돈이지만 당장 대금을 막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게 느껴진다. 결국 4만원을 엄마에게 빌렸다. 교통비. 보험비. 돈은 지금 하는 일 들어오는 대로 갚기로. 신용카드를 만들지 않아 잘 했다는 생각은 언제나 한다. 신용카드가 있었다면 나는 순식간에 신불자가 됐겠지.
그리고. 나만큼 뭘 안 먹는 사람이 없다. 식비도 적게 드는데. 입맛이 고급인 것도 아닌데. 하루에 밥 반그릇-한 그릇, 안 먹어서 42kg에서 왔다갔다 하는데. 걱정하는 분이 계실까 하여 덧붙이면 나는 섭식장애는 없다. 말라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그냥 입맛이 없다. 초등학교 땐 안 먹어서 영양실조 증세를 보인 일도 있고, 나이를 먹어서는 누군가랑 밥 먹는 일(특히 부친을 포함한 가족식사는 거의 항상 체했기에)을 어려워하게 된 이후로 체중이 오른 일이 없다. 여하튼. 돈 나가는 걸 생각하면 사람이 뾰죽해진다.
그런 와중에 시간당 15만원, 그것도 코로나에 걸린 친구가 9000km 밖에서 40도의 더위에 익어 가며 대가 없이 부쳐 주는 돈에 난 부채감을 느낀다. 박은 무심하고 이타적인 성격이다. 나는 반대로 예민하고 좀스럽기 그지없다. 내가 가진 엉망진창을 한 회기 15만원에 하나씩이라도 고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다시 만났을 때 좀 더 자랑스러운 친구가 되어 줄 텐데.
우울로 인해 부서진 집중력은 슬픔도 파편으로 만들었다. 내게 우울은 좁은 바닥 안에 깔려 있는 깨진 유리조각을 밟는 일과도 비슷하다. 하나를 밟고 아파 옆을 디디면 다른 기억이나 걱정이 나를 찌르는 거다. 이 유리조각은 치워도 치워도 쏟아지는 양이 더 많다 보니 결국 밟은 유리를 다시 밟는 일도 많다. 그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나는 또 다른 걱정과 슬픔에 찔린다.
박에 대해 슬퍼했다가 또 이번엔 내가 존경하는 작가의 책에 대한 독후감 비스무리한 서평을 쓰다가 절망했다. 난 왜 이렇게 글을 못 쓰지. 호들갑은 못 떨겠고. 내가 가진 사전은 왜 이렇게 좁기 그지없는지. 무엇보다 나를 슬프게, 아니 빡치게 했던 건 이거였다. 내가 서평을 써 보려고 노력한 책 두 권이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책이었다는 것. 나는 좋아하는 걸 왜 좋아한다고 어떤 점이 좋았다고 쓰는 것도 못하는 머저리지. 뭘 좋아하는지, 그걸 왜 좋아하는지라도 잘 말하고 얘기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이쯤되면 우울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좀 모자라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별 같잖은 이유로 우울하고, 또 그럴 법한 이유로 우울하다. 남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유는 부친과의 관계 정도가 있겠지. 한 번은 술을 마시고 패악을 부리는 모습이 너무 싫어 대들었다가 갈비뼈가 부러졌다. 직접 맞은 것도 아니고 어디 부딪친 것 같은데. 여하튼. 부친의 모습이 싫어 술도 줄이고 어쩌고 하지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문장을 마주한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겉으로는 그와 생김새 외엔 닮은 게 없지만, 나는 그와 닮은 나의 모습을 꽉꽉 눌러 담으며 살고 있다. 그는 내가 갈비뼈가 부러졌던 것도,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사실도 모른다.
말하기조차 쪽팔려서 우울했던 사건으로도 난 우울해진다. 몇 달 전, 내가 좋아했던 작가이자 유튜버가 낸 책을 사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는데 내 건 리그램이 안 되었다. 워낙 많이들 사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을 안 하고 있는 시간이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나도 서체를 멋진 걸로 하고 느낌표도 열몇개 박아넣고 그래볼걸 하는 후회를 했다가 왜 내 것만 안 해주나, 내가 좀 예민하고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게 아닐까.. 하고 태그를 검색까지 해 봤다. 리그램을 해주지 않은 게 '내 것'만 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밋밋한 내 스토리를 굳이 올려줄 필요는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하여튼 난 이딴 이유로도 우울해한다.
여하튼. 학교내 상담만 받아보고 돈 내고 하는, 그것도 돈 내고 받는 상담 치고도 비싼 상담을 받으려니 별의 별 생각과 걱정이 다 든다. 들인 돈만큼 어서 나아져야 해 하는 중압감과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내 본심이 투닥거린다. 와중에 박은 그럭저럭 살만한지(원체 튼튼한 친구라서 걱정을 아주 조금 덜 하긴 한다. 그래도 걱정되지만) 옛날에 같이 여행가 바닷가에서 본 동물이 수달인것같다며 뜬금없이 유튜브 영상을 보내오고, 나온지 20년이 된 영화가 보고 싶다며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놓으랜다. 예 나으리, 하고 찾아주었다. 이새끼 괜찮겠지. 괜찮아야 할텐데. 이 글을 쓰기 직전 박은 오렌지를 먹는다고 했다. 사막이라 오렌지 맛도 드럽게 없다고 모래맛이 난다고 투덜댔다. 다행이다. 죽지는 않으려는가보다.
별것도 아닌 걱정과 삶을 옥죄는 환경과 슬픔을 적당히 버무리면 불면증과 우울증이 된다. 오늘도 그 둘을 양쪽 어깨에 앉혀 놓고 썼다. 둘 다 내려놓는 날이 오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