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연산 Apr 21. 2021

안 괜찮다고 말할 수가 없어

괜찮은 날이 올까

종종 '잘 지내냐'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고민한다. 안 괜찮은데. 안 괜찮다고 말해야 하나.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말해서 상대에게 괜히 미안하다. 그렇다고 괜찮다고 말하자니, 나는 안 괜찮다.


항상 불안과 긴장도가 높은 편이지만, 신체증상이 나타난 일은 없었다. 어제와 오늘은 심장이 빨리 뛰었다. 초조하고 불안했다. 뭘 해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심호흡을 해 봤고, 누워도 있어 봤다. 누워서 심호흡을 해 보고, 만화를 틀어 놓았다. 만화에 3분도 집중하지 않았는데, 100분짜리 한 시즌이 끝났다.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네 시간 넘게 누워 있었다. 병원에 가보고 싶었지만 아직 들지 못한 보험과 통장 잔고가 떠올라서 관뒀다. 항불안제가 정말로 먹고 싶었다.


이렇게 안 괜찮은 내겐 잘 지내? 라는 안부조차 쉽게 넘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어느 사소한 일도 크게 느껴진다. 복기해본다. 어제부턴 왜 이랬지. 동생과 엄마가 싸웠다. 엄마는 자식'들' 키워봐야 소용이 없다 했다. 나까지 괜히 싸잡아 욕을 먹고 있어서 불쾌했다. 동생도 엄마도 많이 힘들어했다. 새벽에 동생을 데리고 나가 시덥잖은 소리나 하며 30분을 돌고 왔다. 남이 뭔 말을 하든 신경쓰기 싫고 나야말로 죽고싶을 지경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엄마는 '남'이라는 말을 너무 싫어하니까. 너까지 왜 그러냐고 할 테니까. 한 방송사의 계약직 공채가 떴다. 자소서를 쓰려다가 막막해졌다. 학점과 자격증 란에 쓸 게 없었다. 나는 우울에 찌들어 지냈는데. 넣어봤자 서류에서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의욕 자체가 사라졌다. 동시에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내 인생에서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아니, 그럴 거란 생각이 와락 들었다.


그런 와중에 친구 둘에게 잘 지내냐고 연락이 왔다. 잘 지낸다고 답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으로 타자를 쳐서 답장을 하는 건데도 목이 턱턱 걸리는 기분이었다. 나의 불안을 깎아서 조금이나마 작게 포장해 '좀 힘들어' 정도로 대꾸했다. 오늘 온 연락에는 멘탈이 와사삭, 이라고 대꾸했다. 사실 와장창으로 적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리창이 깨지는 정도가 아니라 건물이 무너지는데 아래에 있다가 깔리는 기분이다. 나는 내가 뭘 만드는 데엔 젬병이라고 생각했는데, 걱정과 불안, 우울을 자아내는 데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잘 지낸다고 하기도 뭐하고, 잘 못 지낸다고 하면 그것대로 미안하다. '괜찮아' 라고 하지만 한두 번이어어야지. 몇 년째 잘 지내냐는 문자엔 잘 지낸다고 쉽게 쓸 수가 없다. 그래서 미안하다. 나를 신경써 주는데 내가 좋아지질 않아서. 차라리 아무 연락이 오고가지 않았으면 하지만 새벽마다 잊어야 할 전화번호를 복기하는 내가 그런 게 될 리가 없다. 연락이 오면 와서 문제, 안 하면 안 해서 문제. 모순에 양가감정을 잘 버무리면 내가 되겠지.


 와중에 엊그제 생일축하를 드린 옛 춤 선생님에겐 축하를 보내려다가 내 프로필과 배경사진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바꾸고 보내야 하나. 축하하는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우울이 아닌 걸 연기하기도 힘들었다. 결국 몇 마디 짧게 주고받은 안부에서 나는 '잘 지내요' 라고 했다. 그럼요. 전 잘 지내죠. 언젠가 기회 되면 보자구요? 물론이죠 선생님. 그럴 가능성은 좀 낮겠지만.

괜히 좀 그렇던 프로필 사진


안 괜찮다고 말하기도, 괜찮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막막하다. 


작가의 이전글 댄스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